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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고부 갈등이 이혼사유 될 수 있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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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일러스트=박향미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유부남, 유부녀 여러분 민족의 대 명절 ‘설날’ 잘 보내셨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처녀·총각시절의 명절, 특히 ‘설날’은 설레임 그 자체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친지 모두 모여 한복 곱게 차려 입고 세배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8남매 장남이셨던 아버지 덕택에 명절은 참으로 복된 날이었고, 그 중에서도 ‘설날’은 그야말로 ‘대목’ 중의 ‘대목’이었다. 한자리에 모두 모인 수십 명의 일가친척들에게 절 한 번씩만 하면 1년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용돈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아내이자 며느리, 남편이자 사위의 위치가 되고 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개개인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부분의 부부들에게 명절이 그렇게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일단 귀향전쟁으로 겪는 기본 스트레스 외에 주부의 경우 평소보다 높은 노동 강도, 친정과는 다른 시댁에서의 대우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두통과 호흡곤란까지 일으킬 정도이다. 남편의 경우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고, 자칫 아내의 불평과 신세한탄까지 들어야 하니 마음이 괴롭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가. 유독 명절 뒤 끝에 부부싸움을 하고 이혼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듯 하다. 물론 명절에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그동안의 불평불만이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명절을 기화로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고부갈등’이 이혼사유가 될 수 있을것인가. 현재 우리 민법은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에 의한 심히 부당한 대우’ 및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이혼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아내의 입장에서는 시부모님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모님이 아내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각각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과연 어떠한 경우를 ‘심히 부당한 대우’가 있을 때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다.

 일반적으로 혼인 당사자 일방 혹은 직계존속이 배우자의 직계존속 혹은 배우자로부터 혼인관계의 지속을 강요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폭행이나 학대 또는 중대한 모욕을 받았을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며느리가 다소 저능하다는 이유로 시부가 평소에 술만 먹으면 며느리를 친정으로 가라고 폭언을 일삼아 학대한 경우, 시부모 등 시집식구들이 며느리를 식사 등에서 한 가정의 일원으로 대하지 않고 여러 모로 차별대우를 하고, 돈의 사용처를 온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죄인 다루듯 추궁하고 아들 부부의 부부생활, 심지어 잠자리에까지도 여러 모로 간섭을 하고 며느리에 대한 험담, 악담을 예사로 한 경우, 장모의 뺨을 때리고 발로 찬 경우, 고령의 시모를 폭행하고 냉대하여 집에서 축출한 경우, 법원은 각각 심히 부당한 대우가 있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명절’은 오랜 관습에 따라 이루어진 아주 좋은 시절을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복된 명절이 자칫 이혼사유를 만들고 부추기는 날이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명절이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해본다.

유유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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