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팝업] 연인에게, 문우에게, 가족에게 … 예술가의 편지 49편을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박경리, 박완서, 박범신(왼쪽부터)

“편지는 1인칭으로 쓰인 작가의 육성이고, 내면의 소리의 직역본(直譯本)이다. 작가의 내밀한 세계가 분장 없이 노출된다.”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을 묶은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마음산책)을 펴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간 영인문학관장으로 일하면서 모은 예술가들의 편지 2만5000점 중 정수를 추렸다.

 작가 박완서·박경리·유치환·노천명·이광수·서정주·전혜린을 비롯해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바이올리니트 장영주 등의 편지에 해설을 덧붙였다. 절절한 러브 레터에서 가족 편지, 문우들끼리의 편지, 작가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연하장 등 다양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세계적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한국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예술가의 인간적 면모가 생생하다. 지난달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2005년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저에게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이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썼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잃은, 혹독한 아픔을 겪어낸 작가의 토로다.

 박경리 작가는 원고청탁을 간곡하게 거절했다. “다름이 아니라, 괴로움을 호소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어젯밤엔 치통 때문에 밤도 꼬박 샜고요. 치료를 받지만 거의 전부가 상하다시피 하고 눈도 어떻게 된 건지 밤낮없이 쑤셔대니 필요한 독서를 한다는 것도 고통을 이기는 경주라고나 할까요. …제발 용서하여주십시오.”

 박범신 작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한 편의 연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밤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당신과 내 가슴속에 잠자고 그럴 때 이따금 요강 뚜껑으로 물 떠먹던 옛날의 어느 시절인가가 생각나곤 한다. 그때 어떻게 당신과 내가 함께 있지 않고도 불행하지 않았던가.”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