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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화장장이 님비를 넘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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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요즘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일대엔 큼지막한 플래카드들이 걸려 있다. 고양시의회가 내건 것이다. ‘서울시립승화원을 지하화하고 공원화하라’는 내용이다.

 서울시립승화원, 흔히 벽제 화장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현지 주민들에겐 혐오시설이다. 이곳 탓에 지역주민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고양시의회의 불만이다. 이를 단순히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혜택은 전체가 골고루 누리지만, 부담은 주변 지역주민들에게 집중되는 게 혐오시설의 특징이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만, 내 앞마당엔 안 된다고 하는 거다. 특히 시립승화원의 경우 서울시가 고양시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여서 더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는 경제적 보상이 대책으로 동원됐다. 하지만 주민들 성에 영 차지 않는다.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고 서울시가 작심해 돈을 왕창 들인다고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의 운영실태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시립승화원에 가보면 이래서 혐오시설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온다. 고인은 물론 유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소홀하다. 유족은 누구나 도착→고별→입로(入爐)→휴게→출로(出爐)→수골(收骨)이 차분하게 물 흐르듯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이곳에선 뭔가에 쫓기듯 어수선하게 진행된다. 번호판을 붙여 일렬로 배열해 놓은 관망실로 가려면 다른 유족들과 뒤섞이게 된다. 유족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실내는 상조회 직원, 납골당 영업사원들로 북적거린다. 서로 잘 아는 이들끼리는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잡담도 한다. 화장 중에 유골함을 사라며 접근하는 장례용품상이 있는가 하면, 유품 정리할 때 연락하라며 명함을 뿌리는 고물수집상도 있다. 거의 도떼기시장이다. 애틋한 고별, 차분한 추도와는 거리가 멀다. 고인을 캐딜락으로 운구했든, 달구지에 싣고 왔든 똑같다.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처럼 혐오스럽게 운영하니 혐오시설이 된 거다.

 화장장, 꼭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 그렇진 않을 거다. 9년 전 취재차 다녀온 일본 오이타(大分)현 나카쓰(中津)의 ‘바람의 언덕 장재장(風の丘葬<658E>場)’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1996년 세워진 이곳엔 굴뚝이 없다. 재연소 버너가 달린 화장로가 연기와 악취를 완전히 없앴다. 이것만으로도 주민의 민원을 막을 수 있었다.

 설계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69C7>文彦). 그의 손길로 화장장은 작품이 됐고, 건축학도의 순례지가 됐다. 자연채광을 흐드러지게 사용한 실내, 툭 트인 공원, 만남과 이별을 상징하는 조형물, 언덕 너머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간결, 엄숙, 세련, 그리고 차분함이 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떠난 자와 남은 자의 교감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술관 가듯 찾아오는 방문객이 월평균 100명이 넘는다. 주변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오기도 한다. 지역의 자랑거리다.

 해외엔 이처럼 명소 화장장이 제법 있다. 스웨덴의 우드랜드, 독일의 바움슈렌부르크, 스페인의 이구아라다…. 공통점은 설계에 자연요소를 듬뿍 넣어 유족과 지역주민의 거부감을 없앴다는 거다. 국내에도 모범이 나오기 시작했다. SK가 지어 기부한 세종시의 은하수공원과 성남의 시립화장장이 전문가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국토의 제한으로 65%에 이르는 국내 화장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를 반영해 개정된 장사법은 지자체에 적정한 화장시설을 갖추라고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화장장도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매번 무슨 소각공장처럼 지어 지역주민들과 마찰을 일으켜서는 곤란하다. 우리도 지역 명물 화장장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 그러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짓는 사람, 인근에 사는 사람 모두 ‘나 역시 언젠가 가야 할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