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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범죄예방 시스템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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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성철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얼마 전 미국 필라델피아의 ‘미래의 학교(School of the Future)’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 국내 학교와 차별화된 시설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출입구에 손잡이가 없는 출구전용도어(Exit-Only Type Door)가 설치돼 있어 내부의 학교경찰이 열어줘야만 학교 내부로 진입이 가능했다. 행정실은 외부인의 감시가 용이하도록 출입구 근처에 배치됐고, 대형 창호를 통해 내부 행정원이 수시로 내부와 외부를 감시하고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교사 2명이 함께 사용하는 교사연구실이 교실 사이에 있어 교실 내부를 관찰하기 용이했다. 범죄예방 환경설계(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이른바 ‘셉테드(CPTED)’를 적용한 학교였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아동 성폭행 사건들을 보면 셉테드의 주요 원칙인 자연적 감시, 출입 통제, 영역성이 범죄예방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만약 셉테드 원칙을 적용해 ▶지역주민이 학교를 수시로 관찰할 수 있도록 학교 배치와 외부 창호를 계획하고 ▶학교 건물 주 출입구는 전자카드를 소지해야 출입할 수 있으며 ▶홀이 행정실, 교장실 등 교직원 생활공간에 둘러싸여 있었다면 과연 그러한 범행이 가능했을까.

 그 답은 1970년대부터 셉테드 인증시스템을 적용해 온 영국·호주·네덜란드·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1989년 적용된 영국의 SBD(Secured By Design) 인증시스템은 지난 22년 동안 주거·상가건물에 활발히 활용함으로써 침입절도, 차량범죄 등에서 이전에 비해 약 50%의 감소효과를 가져왔다. 호주의 경우 5개 학교를 셉테드 시범학교로 지정해 학교시설을 개선한 결과 학교당 평균 범죄비용을 약 57.7% 감소시킬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영국 SBD를 벤치마킹한 폴리스 레이블(Police Label) 시스템의 도입으로 침입절도를 80% 정도 줄였다.

 셉테드 인증시스템을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친환경 건축물 인증시스템과 동일하게 교육시설 민간투자사업에 셉테드 인증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둘째, 보험료와의 연동이다. 현재 학교 보험 대상은 크게 학생과 시설물로 구분되며 매년 학교마다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셉테드 인증을 획득한 학교에 대해선 보험료를 감면해 주는 제도를 고려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 심해지면서 ‘wee클래스(학생 안정통합 시스템)’, 전문상담교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적인 교육정책만으론 물리적 환경에서 발생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어렵다. 셉테드 인증시스템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정책의 도입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범죄 없는 학교(Crime-Free School)’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박성철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