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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형준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복합유산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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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발 1020m 지점에 위치한 보국사 입구는 아미산의 관문이다. 폭포 옆 바위에 아미산이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2 해발 3077m에 달하는 가파른 바위산 꼭대기에 세워진 사찰 금정사.구름의 바다 위에 불쑥 솟아 있다.

산의 마음 담긴 운해
쓰촨성 성도(成都) 공항에서 아미산으로 향하는 차창 너머 풍경은 온통 회색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빌딩에 이어 국도변 농가와 시골 풍경도 생기 없는 무채색에 가까웠다. 하지만 약 3시간을 달려 마주한, 운해(雲海)와 숲으로 둘러싸인 아미산은 지금껏 보았던 풍광과는 사뭇 달랐다. 중국 3대 불교 영산으로 알려진 아미산·오대산·천태산 중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아미산이 유일하다. 신비로운 운해와 불광, 일출로 중국 시인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아오던 아미산은 황산과 더불어 구름바다로 유명한 명승지다. 이를 증명하듯 두 차례 방문 기간 동안 지루할 정도로 볼 수 있었던 풍광이 바로 운해였다. 아미산은 사계절 내내 운해가 생긴다.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계곡과 산록, 정상은 물론 산문이 자리한 마을까지 온통 구름 속 세상이다.

운해 속 아미산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바람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풍광은 신비로움을 연출할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갑자기 뿌려대는 빗방울은 방문객을 곤경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운해가 만들어낸 변화무쌍한 풍광은 중국인들을 아미산으로 불러 모으는 주요 요소 중 하나였다.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운해 사이에 문득 모습을 드러낸 웅장한 산과 바위, 그리고 그 위에 우뚝 선 사찰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넘어 어느새 경건한 마음이 된다.


▲3 금정사의 대표 건축물인 금정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방문객들.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곳마다 자그마한 정자가 세워져 있다. 4 아미산 최고의 명찰이자 중국 6대 고찰로 꼽히는 만년사의 대웅보전. 5 낙산대불의 높이는 71m에 달한다. 중국에 세워진 석상 중 최대 규모다. 낙산대불을 둘러보며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방문객들.

중국 불교의 중심 아미산
지금은 불교성지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아미산은 원래 도교의 성지였다. 촉나라 때 도교 성지였던 아미산에 사찰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다. 불교가 번창하던 당나라부터 송·명·청나라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찰이 있었다. 문헌에 따르면 당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는 빼어난 경관마다 어김없이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1600년 동안 아미산을 지켰던 100곳에 달하는 사찰 중 현재 대표적인 고찰로는 산문 초입에 자리한 보국사(報國寺)를 비롯해 만년사(万年寺), 복호사(伏虎寺), 금정사(金頂寺) 등 26곳을 꼽을 수 있다. 명나라 때 세워진 보국사는 원래 유교·불교·도교를 동시에 모신 보기 드문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사찰로 바뀌었다. 보국사와 금정사 중간지점에 자리한 만년사는 1607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사찰이다. 북송 때 제작한 보현보살상을 비롯해 다양한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그 외에도 팔각지붕으로 유명한 웨이어바오전과 전전, 선봉사, 운동평, 피루전 등 중국 불교건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찰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중국 최고의 신경을 자랑하는 금정
아미산의 최고봉은 해발 3099m에 달하는 만불정(萬佛頂)이다. 하지만 뭇사람들을 유혹하는 곳은 해발 3070m에 있는 금정(金頂)이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거목이 우거진 숲과 계단을 따라 오르면 운치 있는 백운사(白雲寺)가 나온다. 백운사를 뒤로 하며 차오르는 숨을 참고 조금 더 오르면 코끼리 조각상이 나열된 계단 위쪽에 위치한 곳이 금정이다.금정은 아미산의 상징이다. 이곳에는 명나라 고지선사(高智禪師)가 창건한 태자평(太子坪)를 비롯해 조전(祖殿), 고명심전(古明心殿)으로 이루어진 금정사가 있다. 이곳에서 맞는 일출은 대단하다. 관광객들이 일출을 맞는 대표적인 장소는 금정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영명화장사(永明華藏寺)다. 사실 운해 때문에 아미산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확률은 5~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방문객들이 금정을 찾는 까닭은 중국인들에게 이곳이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성스러운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짧은꼬리원숭이로 대변되는 생태계
방문객 중 십중팔구는 사찰을 찾지만 자연생태계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도 꽤 많다. 아미산은 중국에서 가장 풍부한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자료에 따르면 아미산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조류를 합하면 5500종에 달한다. 아미산에 뿌리를 내린 식물은 3200여 종. 한 지역에 이토록 다양한 생태계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아열대 기후대와 2500m에 달하는 표고차도 무시할 수 없다. 하나 보다 중요한 요인은 겹겹이 이어진 산과 계곡 사이를 덮고 있는 운해와 안개 때문이다. 연중 아미산을 덮고 있는 운해와 안개는 나무에 부딪히면서 풍부한 물을 만들어 낸다. 스스로 만들어낸 넉넉한 강수량과 온난한 기후는 대나무·삼나무·소나무 등을 거목으로 키워냈다.

아미산을 대표하는 동물은 자타가 터줏대감으로 인정하는 원숭이다. 아미산에 서식하는 짧은꼬리원숭이는 줄잡아 수백 마리에 달한다. 짧은꼬리원숭이는 숲이 우거진 곳은 기본이고 방문객이 이용하는 등산로와 계단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짧은 꼬리 원숭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음식물이나 흥미로운 물건을 지닌 방문객을 발견하면 어느새 접근해 낚아채 난간이나 숲 속으로 사라질 정도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다음 목표를 찾는다.

중국 최대의 석상 낙산대불
아미산 동쪽 끝자락에는 낙산대불로 더 잘 알려진 낙산시(樂山市)가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민강(岷江)을 응시하고 있는 낙산대불은 민강을 오가는 선박의 안전을 기원할 목적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이다. 거대한 미륵보살상 제작에 착수한 이는 당나라 승려 해통(海通)이었다. 그러나 해통은 미륵보살상이 완성되기 전에 입적했고, 낙산대불은 훗날 이곳에 부임한 절도사 위고(韋皐)에 의해 모습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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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준씨는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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