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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국민 구하라” 철벽부대 20명 새벽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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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2일 새벽부터 구출작전을 편 구승환(42) 중령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군의 사명’을 장병들이 체험했다는 것도 큰 소득이었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작전명:‘100년 만의 눈 폭탄을 해체하라’.

 12일 새벽 2시40분 육군 철벽부대 불사조연대 1대대에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폭설 때문에 마비된 7번 국도상에 발이 묶인 국민을 구하라는 명령이었다. 대대장 구승환(42) 중령은 즉각 20명으로 구호팀을 꾸렸다. 근무 중이거나 낮에 하루 종일 눈을 치우고 곤히 잠든 병사 대신 주임원사와 소대장 등 간부들로 구성했다.

 구호팀은 캔커피·두유·초코파이·빅파이 등 간단한 식량을 군장과 의류대에 집어넣었다. 식량을 하나씩 짊어진 구호팀이 부대를 출발한 건 새벽 3시. 눈이 허벅지 넘어까지 쌓였다. 군화는 젖었고, 발은 얼어 들어갔다. 그래도 앞으로 전진해야 했다. 손전등을 들었지만 눈이 시야를 가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한 시간여 사투 끝에 부대에서 1.5㎞ 정도 떨어진 삼척시 원덕읍 임원 고갯길에 도착했다. 고립돼 있던 버스 2대와 10여 대의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60여 명이 발이 묶인 채 차 안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먼저 먹을거리부터 전달했습니다. 다행히 부상당한 사람은 없어 밤새 기다리라고 하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죠.” 부대에서 7㎞ 떨어진 근덕면 용화 고갯길에 50여 명이 차량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퉁퉁 불은 발과 군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온몸이 땀에 젖어 눈은 몸에 닿자마자 녹아 버렸다. “춥고 힘들고를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 고립된 국민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죠.” 구 중령과 부대원들은 두 시간 만에 승용차와 트럭 등 50여 대를 찾았다.

 “살았다! 감사합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부대원들은 쉴 수 없었다. 일부 대원을 마을로 내려보냈다. 새벽부터 마을 가게 문을 두드린 주임원사 등이 120여 병의 생수를 사다 공급했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아 시동을 걸지 못하는 차량도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대원들이 인근 초소로 달려가 한 시간 만에 20L들이 경유 2통을 가져왔다. 아이들과 함께 차 안에서 추위에 떨던 김영학(38·경기도 수원시 화서동)씨는 “군인들이 식량과 기름을 공급해 줘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며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부대 관계자에게 보냈다.

 이틀째 고혈압 약을 먹지 못한 장병호(53·강릉시 주문진읍)씨에게는 약을 구해 전달했다.

 구호팀의 작전은 원래 오전 11시쯤 차량들이 출발하면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설작업이 늦어져 2차로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작전이 하달됐다. 오후 1시 구 중령은 다시 대원을 이끌고 나섰다. 그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군의 사명’을 장병들이 체험했다는 것도 큰 소득이었다”고 말했다.

삼척=이찬호·신진호 기자

◆군 긴급출동=군은 연인원 1만2000여 명, 헬기 11대, 중장비 330대 등을 투입해 눈에 고립된 국민을 구조하고 제설작업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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