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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기 팍팍 살렸다, 대박 프로그램 ‘슈퍼스타K’ 가 탄생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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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호 20면

기업은행 자회사인 IBK시스템 볼링동호회 회원들이 9일 저녁 볼링을 하고 있다. 신입사원에서 팀장까지 60여 명이 가입해 활동한다. 조용철 기자

보안업체인 ADT캡스 임원들은 짬만 나면 아이돌 가수들 노래와 걸 그룹의 댄스를 연습하느라 진땀을 뺀다. 직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20~30대 신세대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습득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다진 실력은 워크숍 등의 사내 행사에서 선보인다. 그럴 때마다 행사장은 “오빠!” 환호성으로 달아오른다. 이 회사가 세대 간 소통에 남다른 노력을 쏟게 된 것은 10년 전부터.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게 계기였다. “보안기업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와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가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방해했다.”(이혁병 전 회장) 신·구세대 간의 대화가 꽉 막히다 보니 사소한 문제가 갈등·대립으로 이어지곤 했다. ADT캡스는 그때부터 젊은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성과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로 나타나 업계 1위를 질주했다.

‘격식파괴 문화’로 재미 보는 기업들

구성원의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인 인터넷 업체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 서울 중구 서소문 본사 3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는 근무시간에도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찻잔을 손에 들고 삼삼오오 대화하는 모습이 외부인의 눈엔 근무지를 벗어나 잡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하는 형태만 다를 뿐 엄연한 정상근무의 일부다. 한기정 홍보팀 과장은 “젊은 층에게 콘텐트를 팔아야 하는 SK컴즈의 경쟁력은 놀이터 같은 직장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임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 회사엔 사장실이 따로 없다. 임원들은 사내 방송을 통해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입사 4년차인 정고운 대리는 “직장 분위기가 좋아 세대 갈등은커녕 아주 신나게 일에 몰입한다”고 말했다.

아예 신입사원에게 자기들 입맛에 맞게 기업문화를 혁신하도록 주도권을 넘겨준 기업도 늘어난다. 웅진코웨이 사장과 1~2년차 신입들이 구성한 ‘신기나라 운동본부’가 바로 그것이다. SK컴즈에선 사내 추천으로 뽑힌 20명의 ‘해피위원회’가 기업문화 혁신방안을 마련하는 데 1년차 신입사원이 참여하는 경우가 잦다. IBK시스템도 신세대 중심으로 혁신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왜 젊은 기업문화를 만들려고 할까. ‘변화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STX그룹의 지주회사인 ㈜STX의 김철수 기업문화팀장은 “그간 기업을 지배해온 수직적 조직문화로서는 신세대 직장인들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그룹은 계열사 직원 중 70%가 30대 이하다. 그래서 조직문화 혁신의 발상 자체도 다르다. 신입들을 기존 문화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직장 문화와 분위기를 젊은 세대에 맞춰 바꾼다는 것이다.

경력직만 뽑았던 IBK시스템이 4년 전부터 신입사원 채용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석훈 경영전략실장은 “국책은행 자회사여서 보수적 분위기가 강하지만 신세대 직원을 통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지 않으면 조직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신세대들은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하지만 고참보다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시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일하는 분위기를 중시하는 젊은 층의 직장 선택 기준도 작용하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인재일수록 직장 분위기에 민감하다. 그러다 보니 내로라하는 회사들조차 힘들여 뽑은 인재를 다른 회사에 빼앗기기 일쑤다. 신세대 중에는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에도 아랑곳없이 기업·조직 문화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SK컴즈 신동하(32) 대리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그는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에 입사했지만 무조건 상사의 말을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 문화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조직문화 혁신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많은 회사에서 시도한 호칭 파괴는 조직혁신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CJ그룹은 몇 년 전부터 호칭에서 직급을 떼고 ‘님’으로 통일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뒤따랐다. SK텔레콤은 팀장을 제외한 부장 이하 직원의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호칭만 놓고 보면 위·아래 구분이 엷어진 것이다. 그러자 젊은 신세대들의 기가 팔팔해지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CJ그룹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진출해 영화 ‘해운대’와 ‘슈퍼스타K’ 같은 성공작을 일구어낸 배경에는 그런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오리온과 해태제과는 몇 년 전 직원들의 직급 대신 ‘님’으로 부르는 식의 호칭 파괴를 시도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조직의 생명은 일사불란’이라는 생각은 늘 조직문화 혁신을 가로막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관행과 습관을 버리고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대기업 부장급인 L씨는 “다들 조직문화 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나 나이가 들수록 호칭과 지위·입지와 관련된 문제에 민감해진다”며 “제조업처럼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분야일수록 특히 그렇다”고 지적했다. 조직의 중추를 맡은 임직원들의 반대 정서도 걸림돌이다. “죽어라 고생해서 이 정도 일궈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구닥다리 취급하느냐”는 반발 심리가 작용한다. 신세대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뿌리 깊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선 “힘든 걸 잘 참지 못하고 스펙(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얄미울 정도로 업무를 소홀히 한다”며 신세대를 성토하곤 한다.

이 모든 사례는 기업문화 혁신의 왕도가 따로 없음을 말해 준다. 기업이나 업종 특성에 맞게 독창적으로, 섬세하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남들이 성공한 길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가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고참 세대의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을 살리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신세대의 장점을 흡수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변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서다. 입사 2년차인 ㈜STX의 이지은 주임은 신세대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다. “경험이 적다 보니 겁 없이 변화를 즐기는 편이죠. 최신 기술도 잘 흡수하는 편이고 다양한 요소를 융합해 새로운 걸 창조하는 데 강한 흥미를 느끼고요.” 혁신을 생각하는 조직들이 신세대의 모험심을 북돋워주는 이유다.

중앙대 전병준 교수(경영학)는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따라하기 전략’에서 벗어나 ‘창조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창의성과 당돌함으로 무장한 신세대는 훌륭한 ‘공격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차원에선 오히려 신세대가 기존 문화에 너무 빨리 적응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히 한국 직장인들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조직 적응 능력이 좋은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세대는 한국 경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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