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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매달려, 왕의 색을 뽑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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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정화의 조각보. 홍화로 물들인 각색의 천을 기워 만들었다. 왕의 색이라는 ‘대홍(大紅)’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빨강은 힘 있는 자의 색이었다. 빨강 염색은 값비싸고 기술적으로도 힘들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빨강은 왕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서울 명륜동 짚풀생활사박물관 공간S에서 ‘왕의 색-대홍(大紅)’ 특별전을 12~27일 연다. 20년간 전통염색 연구에 매달려온 김정화씨가 내놓는 붉은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전통염색에 쓰인 빨강은 적(赤)과 홍(紅)으로 나뉜다. 홍은 순도가 높은 빨강이요, 적은 황·청·흑색이 함유된 순도 낮은 빨강이다. 김씨는 “식물 색소 성분을 추출해 만든 분말염료를 사용하는 현재의 천연염색은 사실상 전통염색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염색의 경우 식물이 가진 다양한 성분이 혼입돼 명도와 채도가 낮은 독특한 색감을 갖는다. 또한 반복적으로 염색하는 공정에서 식물의 성분이 혼입돼 섬유의 강도가 높아진다. 빛을 흡수해 반사광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홍색은 주로 홍화꽃잎으로 염색한다. 적색은 동남아지역에서 수입한 소방목이란 나무에서 얻은 색으로 황색·자색 등을 함유해 색감이 다양하다. 특히 홍색은 홍화꽃의 생산단가가 높고 색소가 물에 녹지 않아 공정이 복잡하고 길다.

오미자와 잿물을 이용해 색소를 추출한 뒤 면이나 마직물에 염색하고, 염색한 무명에서 다시 색을 게워내 명주에 염색하는 ‘개오기’ 기법이 쓰인다. 명주에 염색하는 걸 반복하면 맑은 홍색에서 차차 진홍(眞紅), 심홍(深紅), 대홍(大紅)으로 변모한다. 특히 수십 번 공정을 반복해 얻어낸 대홍은 맑고 진하되 가볍지 않아 존귀함을 드러내던 왕실 복식에 쓰였다.

 김씨는 “수백 년이 지나도 색이 빠지지 않는 전통염색에 매료돼 기술 습득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대홍색을 얻어냈다”며 “화학염료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 회화로 승화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전통염색으로 물들인 홍색, 적색의 염색 직물 자료 179점이 전시된다. 홍화 염색 과정을 담은 사진자료와 단계별 결과물도 보여준다. 02-743-8787.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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