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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유학생 6만 명마구잡이 유치 후 방치한류팬에서 反韓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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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외국인 유학생 숫자는 한 나라의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국력과 호감도, 문화 수준 등을 압축한다. 유학생들은 자기가 배운 학교·국가·지역을 널리 알리는 전도사가 된다. 일부는 유학한 나라에 주저앉아 그 나라 사람이 되다시피 한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명문대학을 육성해 개도국의 인재를 유치해온 이유다. 한국에 온 중국인 유학생 숫자가 6만 명에 육박한다. 한국사회는 과연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있는가. 사진은 충북 청주대 앞 중국식품점 모습.

차이나 파워는 대학가에서도 넘쳐흐른다. 전국 대학 캠퍼스마다 중국어가 들리고, 인기 학과·강좌엔 중국 유학생 비율이 30%를 넘는 경우도 적잖다. 학교 주변엔 중국 학생들을 겨냥한 원룸과 식당, 노래방이 수두룩하다. 이런 현상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부산·경남의 경우 그 숫자는 1만 명을 넘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유학생 교류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나가는 쪽이었다. 어학연수생부터 차이나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들까지 너도나도 중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1인당 소득 3000달러를 돌파할 무렵 대도시 중산층이 자녀 유학 붐을 일으키며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1자녀 정책’ 아래 태어난 중국의 10, 20대는 부모세대와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꿈꾼다.

한국을 향한 중국인 유학생은 2005년부터 5년간 2.7배나 급증했다. 한국 기업 취업, 한류, 유학비용, 손쉬운 입학전형, 지리적인 근접 등의 변수가 작용했다. 국제화 압력을 받은 수도권 대학, 재정난에 몰린 지방대학들이 과열 유치경쟁을 벌인 측면도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유학생 사회 일각에서 혐한(嫌韓)·반한(反韓) 기운이 엿보인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중국에서 실패한 전철을 중국인 유학생 역시 똑같이 밟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1960년대 궁핍한 나라살림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 개도국의 우수 학생들을 불러들였다. 전액 장학금에다 숙식·용돈까지 대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중국 유학 뒤 이들은 자기 나라의 대들보로 컸다.

중국이 요즘 중동·아프리카에서 미국·유럽과 맞먹는 외교력을 발휘하는 비결 중 하나다. 중국은 북한과도 꾸준히 인재를 교류해왔다. 그 덕에 대북 채널과 영향력은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G2(미국+중국) 시대를 맞아 미·일도 중국과의 유학생 교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10만 명의 미국 학생을 중국으로 보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의 1월 미국 방문을 계기 삼아서다.

미국행 중국 유학생은 지난해 12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 역시 중국 유학생을 받으려고 규제 벽을 낮추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9월 센카쿠 열도(중국 이름 댜오위다오)에서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는 영유권 분쟁을 겪은 뒤 중·일 물밑 채널의 취약함을 절감했다.

한국은 이미 중국을 빼놓곤 경제·안보를 논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 만큼 엘리트 학생들의 상호 교류를 확대할 시스템이 절실하다. 지금처럼 대학에만 맡겨놓다간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차원에서 국비 장학생 선발을 확대하되 한국어 능력시험 요건을 강화하고, 유학생 복지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2만여 개의 한국 기업을 활용한 인턴십 확대도 장려할 만하다. 다른 한편으론 학업 능력이 뒤떨어지는 중국 학생들이 한국 대학을 ‘학력 세탁소’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문턱을 높여야 한다. 중국 유학생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는 게 시급하다.

중국인 유학생 6만 명 시대는 한국 사회가 어렵사리 확보한 경쟁력이다. 이들을 지한(知韓)·친한(親韓) 인사로 키울 때 한국은 중국인들에게 ‘살고 싶은 이웃나라’로 다가갈 수 있다. 유학생은 결코 돈벌이 대상이 아니다.

이양수 기자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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