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 검사 남기춘 퇴장 … 극과 극 평가 속 ‘검’ 놓다

중앙일보

입력 2011.01.28 20:28

업데이트 2011.01.2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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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 수사가 과도기(過渡期)에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인 듯하다.”

 28일 남기춘(오른쪽 사진) 서울서부지검장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대검의 한 간부가 한 말이다. 이 간부의 말은 검찰 수사방식도 후진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는 의미다.

 검사 남기춘.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직설적 성격의 강골(强骨) 검사라는 데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강단이 있다’는 긍정적 평과 ‘외골수라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검사’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들었다.

 그는 검사 생활 22년 동안 강력부와 특수부 검사로 있었다. 조폭 수사를 많이 하다 보니 처신에 조심했다. 사람을 가려 만났다. 술집·밥집도 비싼 데는 가급적 가지 않았다. 1990년 서울지검에 초대 강력부가 출범했을 때 심재륜 당시 강력부장 아래 말석 검사였다. 9년 뒤 대전법조 비리사건 때 직무집행정지라는 징계를 받은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이 검찰 수사에 반발, 서울로 올라와 검찰 수뇌부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대구에서 서울까지 동행한 이도 대구고검 검사로 있던 남 지검장이었다. 이후 검찰 수뇌부에 찍혀 4년간 지방을 전전하던 그는 2003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남 지검장은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 SK 등 대기업을 대상으로 성과를 올렸다.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 중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150억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한 것도 그였다. 박 원내대표는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대기업 수사로 빛을 본 남 지검장의 발목을 잡은 건 묘하게도 대기업인 한화였다. 차명계좌 5개를 근거로 한화 비자금 사건 수사를 시작했지만 별 성과가 없자 저인망식 수사로 전환됐다. 넉 달 반 동안 계열사 20여 곳의 압수수색과 300여 명의 회사 임직원 소환조사가 이어졌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기업 총수로서는 드물게 세 차례나 소환조사를 받았다.

 “신속히 환부를 도려내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하라”는 김준규 검찰총장의 지침과도 어긋난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남 지검장이 대선자금 수사할 때와 지금 상황을 착각하고 수사를 지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증거와 진술이 많이 확보돼 자백만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한화 수사는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았음에도 살아 있는 기업을 지나치게 밀어붙이기식으로 수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옛날처럼 마구잡이식으로 수사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특히 멀쩡히 잘 굴러가는 대기업 수사를 하려면 개별 비리를 정확히 도려내야지, 나올 때까지 다 파헤친다는 식으로 하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특수부 검사들은 “수사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는데 국민은 속전속결로 거악을 척결하던 과거 특수부 검사들만 생각한다”며 “그래도 수사 시스템을 버전업시켜 무리한 수사가 나오지 않도록 시스템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조만간 김승연 회장을 비롯해 전·현직 한화그룹 임직원 1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최선욱 기자

남기춘 사퇴의 글

이제 저에게도 때가 왔다고 판단해서 정든 고향 검찰을 떠나려 합니다.(중략) 검사 시보 시절 열정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한 가족처럼 지내는 사무실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끌려 검사직을 지망하게 되었고 결국 이곳에서 청춘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기회 덕분에 정의감, 바른 자세, 억울한 사람 만들면 안 된다는 교훈 등 귀중한 가치를 배웠고 그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시간을 버렸습니다.(중략) 다만 그동안 저의 작은 그릇에서 비롯된 편협한 생각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신 여러분들께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믿는다”(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몸은 떠나더라도 검찰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도 많이 하겠습니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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