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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장관 유인촌과 ‘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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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8년 3월 중순, 봄볕은 쌀쌀했다. 그래도 그는 “건물 안은 답답하잖아”라며 밖을 고집했다. 얼마 전까지 배우였던 그가, 지금 내 눈 앞에 장관으로 앉아 있다는 게 낯설었다. 그는 여전히 소탈했다. 인터뷰 도중에 사람들이 알아보고 악수를 청해도 일일이 응했다. 손을 흔드는 선선한 표정은, 영락없는 ‘배우 유인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김윤수, 김정헌 그 양반들 왜 그러시는지…. 자꾸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지. 뭐가 문제였는지 낱낱이 얘기하고 말 거라고!”

 내 귀를 의심했지만, 유 장관의 입에서 나온 건 분명 김윤수·김정헌이란 이름 석자였다. 유 장관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장, 물러나라”고 처음 언급한 건 그 해 3월12일이었다. 광화문 문화포럼에서다. 이후 정국은 급물살을 탔다. 그는 논쟁의 한복판에 섰고, 뉴스메이커가 됐다. 방송 카메라들이 문화부에 상주했으며, 주요 일간지들이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지상중계했다. 20여 년 스타로 살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런 열기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바로 권력이었다. 그 권력에 취해 그는 금도(襟度·도량)를 보이지 못하며 ‘실명’을 내뱉고 말았다. 인터뷰는 같은 달 17일자 본지 1면에 보도됐다. 취임 한 달도 안 된 장관 유인촌에게 ‘완장’이란 이미지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역풍은 거셌다. 거명된 두 사람도 완강히 버텼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호흡을 고른 유 장관은 ‘감사’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물론 역대 어떤 권력도 ‘표적’ 감사나 수사를 했다. 문제는 결과물이다. 실컷 털었는데 별 게 없었다면 덮어야 했다. 어줍잖은 감사 결과를 갖고 내몰자 두 사람은 소송을 걸었고, 그 부메랑은 퇴임하는 날까지 유 장관의 발목을 잡았다.

 치명타는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이었다. 아무리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 해도, 그래서 한예종을 ‘좌파의 소굴’로 전락시켰다 해도, 황지우라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중견 시인이다. 신망 두터운 문화계 인사를 “학교발전기금 600만원을 개인 용도로 썼다”는 궁색한 이유를 들먹이며 욕 보인 건 치졸했다. “영수증 잘못 처리한 것”이라며 황 전 총장이 제 발로 한예종을 나가는 순간, 유 장관의 ‘완장’은 굳어졌다.

2010년 10월 4일 서울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국회 문방위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장관은 역대 최장수 문화부 장관이다. 2년11개월 임기 동안 그가 해 놓은 일은 많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연 것도, 백성희·장민호 극장을 지은 것도, 국립현대무용단을 창단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어떤 문화부 장관보다 열심히 일했다. 이만큼 문화 현장을 많이 뛰어다닌 장관 없다”는 게 문화부 직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그는 부지런했고 열정적이었고 진정성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장관 유인촌을 ‘완장’과 ‘막말’과 ‘회피 연아’로만 소비했다. 그걸 단지 좌파들의 집요한 공격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는 호감형 이미지로 스타가 됐고, 그 덕에 장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장관 유인촌을 만든 밑바닥에 대중의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장관으로서 이토록 부단히 뛰어다녔는데도,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낼 수 없었던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만약 딴 장관이 산하기관장을 교체했어도 이토록 이슈화됐을까. 장관 유인촌이었기에 시끄러웠던 게다. 그건 서글서글했던 양촌리 김회장 둘째 아들에 대한, ‘역사스페셜’을 진행하던 지적인 배우에 대한 대중의 배신감이었다.

정병국 후보자가 19일 국회 청문회를 통과함에 따라 장관 유인촌은 이제 자연인이 됐다. 그가 다시 연기로 돌아올까. 아마 힘들 게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그가 무대의 ‘햄릿’에 만족하지 않을 것 같다. 본인도 당분간 무대에 돌아가긴 힘들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내년 4월 총선 출마? 그때까지 ‘완장’ 이미지를 털어낼 수 있을까.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의 일요신문 ‘중앙SUNDAY 매거진’에서 2년간 연재됐던 ‘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가 이번 주부터 중앙일보로 옮겨옵니다. 공연계 안팎의 사람 풍경을 때론 따스하게, 때론 날카롭게 짚어내 독자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까칠 최 기자’는 앞으로도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계의 속살을 드러낼 보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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