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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추적] '한중 스파이 전쟁'의 숨겨진 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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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장교 고 중령은 택시를 타고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으로 가던 중 체포됐다

월간중앙 간첩죄로 6개월 중국 옥살이 고 중령의 굴욕, 나라가 버렸다?

2009년 여름 어느 날 중국 베이징(北京)의 모처. 현지에서 근무하는 한국군 정보 기관 소속 장교 고모 중령에게 급작스러운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빨리 대피하라.”
그는 서둘러 안전가옥을 빠져나와 낚아채듯 택시를 잡아탔다. 행선지는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택시가 출발하자 몇 대의 차량이 서서히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미 마크를 당하고 있었던 것. 얼마쯤 왔을까, 뒤쫓던 차량이 갑자기 택시 앞을 가로막고 비켜 세웠다. 여러 명의 사내들이 민첩하게 내려 택시를 에워쌌다. 그중 한 명이 사태파악을 못 하고 급히 정차시킨 데 항의하는 택시 운전사를 가격했다. 그사이 또 다른 한 명은 권총을 고 중령에게 들이대며 한국어로 말했다.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우리는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이다. 당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하지만 대북 정보를 수집하던 한국군 정보기관 소속 고 중령에게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고 중령은 2009년 7월 중순 간첩죄 혐의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 관계자는 “약 6개월간 구금 생활을 한 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고 밝혔다.

같은 기관 소속 조모 소령이 잡힌 지 약 일주일 뒤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서울의 정보 소식통은 “조 소령은 2009년 7월 10일께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파견나왔다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붙잡혔다”면서 “간첩죄로 중국 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약 14개월간 복역한 뒤 지난해 9월 말 한국 측에 인도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활동을 이유로 현역 영관급 정보 장교 2명이 잇따라 중국에서 체포되는 보기 드문 일이 발생한 셈이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소식통과 정보 관계자들을 통해 추적했다.

2005년 10월 28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 중국군 장교 미끼에 걸린 조 소령 사건

먼저 앞서 체포된 조 소령 사건이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은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A대교(대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A대교는 한국 정보당국의 정보원 역할을 하던 속칭‘빨대’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조 소령이 체포되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대북 관련 기밀을 우리 측 정보기관에 제공했다고 한다. 조 소령 역시 그를 정보원으로 포섭해 활용하고 있었다.

A대교는 고위급 탈북자 망명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5월께 입국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양강도의 청년동맹 책임자인 설정식 제1비서를 한국 정보당국과 연결해준 사람이라는 것. 청년동맹은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노동당 외곽조직으로 가입 맹원 수가 약 500만 명(북한 인구는 약 2400만 명)에 이르는 북한 내 핵심 사회단체다. 특히 후계자 김정은의 등장과 함께 청년조직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힘이 부쩍 실렸고 조직 책임자의 위상도 그만큼 올라갔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소식통은 “A대교를 통해 설정식이 망명했다”면서 “북한 당국에 댐 공사비 유용 건 등이 발각돼 신분의 위협을 느끼던 설정식은 부하 직원 2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갔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A대교의 활동이 중국 공안당국에 적발되면서부터다. 소식통은 “국가안전부 보안팀이 한국 정보기관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을 발견, 그를 체포해 한국정보요원을 유인할 것을 종용했다”고 말했다. 결국 A대교는 정보를 제공하던 한 루트인 조 소령을 지목했고, 스스로 미끼가 됐다고 한다.

조 소령은 ‘큰 건’이 있으니 급히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받고 한국에서 선양으로 들어갔다. 당시 조 소령은 한동안 공들여온 북핵 관련 정보자료 입수에 문제가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외국 정보기관의 경우 물적·인적 투자를 해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한국의 경우 심지어 개인이 공작사업에 들어간 비용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며 “정성을 기울이던 정보망이 무너지면 다른 실적을 쌓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하게 되는 일도 종종 생긴다”고 귀띔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위치한 국가안전부·공공안전부 청사.


‘북한이 개발 중인 신형 미사일과 관련한 비밀문건이 있다’는 덫에 걸려든 조 소령이 약속된 장소에 나타나자 국가안전부 요원들은 급습해 체포했다. 조 소령은 핵·미사일을 비롯한 북한 관련 정보를 담당해왔다. 중국 공안당국은 그를 중국 군인과 접촉해 군사기밀을 입수하려 했다는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했다. 한국 정부는 한중 외교관례 등을 들어 추방 형태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재판에 회부했다. “중국 정부는 조 소령을 강도·사기범 등 다른 한국 범죄자들과 함께 범죄인 인도 형식으로 한국으로 보냈다. 정보활동을 이유로 적대국이 아닌 나라의 현역 장교를 이례적으로 장기 구금하고 잡범 취급을 한 데 대해 국내정보요원들 사이에 상당한 반발이 일었던 것으로 안다.” 정보 관계자들은 조 소령에 대한 대응을 두고 한중 두 나라 정보당국이 정보활동을 둘러싼 외교마찰을 해결해온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양측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고위 정보당국자가 상대국을 방문해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뒤 해당 인사를 추방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왔다.

■ 대피 늦어져 6개월 옥살이한 고 중령

조 소령이 체포되자 문제는 복잡해졌다. 중국 공안당국은 또 다른 한국 정보요원 색출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고중령이 타깃이 돼버렸다. 조 소령과 마찬가지로 대북 관련 주요 정보 입수가 그의 주 임무였다. 하지만 그는 조소령과 달리 베이징을 무대로 현지에 장기체류 중인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흑색요원이었다.

두 장교가 체포된 시점은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같은 해 5월 2차 핵실험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행위로 우리 정보요원들에게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수집강화 지시가 내려진 때였다. 소식통은 “선양에서 조 소령이 체포된 직후 고 중령의 신원이 노출된 점으로 미뤄 이미 국가안전부 요원들이 고중령의 통화 내역 등을 꿰고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마디로 그의 동선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그는 “조 소령 체포 사실을 늦게 전달받아 대피가 늦어져 잡힌 것 같다”고도 말했다.

조 소령 체포로부터 일주일여가 흐른 뒤 소식을 통보받은 고 중령은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중 대기하고 있던 중국 측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이후 간첩죄 혐의로 6개월간 구금생활을 한 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한국 송환 후 정보당국 자체 조사에서도 ‘늦은 통보’가 고중령이 체포되는 데 한몫한 것으로 지목됐다고 한다. 정보 관계자는 “조사 당시, 수행 중이던 고유 임무 때문에 그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면서 “고 중령본인도 이를 강하게 문제 제기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조직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 탓인지 모르겠지만, 자진 신청해 6개월 뒤 전역했다”고도 말했다. 40대 초반의 조 소령 역시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는 같은 기관 군무원으로 전환 근무중이라고 한다. 소식통은 “조 소령은 중국에서의 장기 구금으로 인한 정신적인 압박에 크게 시달린 듯했다”고도 언급했다.

■ 중국의 노골적 북한 편들기 논란

이 사건은 중국 정부와 정보당국이 베이징과 북·중 국경을 무대로 암암리에 펼쳐지고 있는 남북 간 첩보전에서 북한 쪽의 손을 들어준 사례로 지적된다. 최근 밀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북한과 중국이 은밀한 교감 아래 한국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망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점에서다. 중국이 2009년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은 물론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노골적인 북한 편들기에 나섰던 연장선상이란 이야기다.

이런 움직임은 1990년대 말 중국이 유사한 사건 때 한국측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는 온도 차가 확연하게 느껴진다는 게 정보당국과 정보 관계자들의 말이다. 1999년 7월 중국 정부는 북·중 국경지역 등지를 배경으로 남북한의 첩보전이 과열 양상을 빚자 적극 개입에 나섰다. 탈북자를 이용한 대북 정보 탐지와 이를 막으려는 북한 반탐(反探)기관 사이의 숨막히는 첩보전을 간파한 중국 공안당국은 하루아침에 남측 정보요원 30여 명을 체포해 조사했다. 당시 탈북자의 한국행을 지휘한 국내 모 항공사의 선양 부지점장도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인 게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들에게 “활동 내용을 자백하면 돌려보내 주겠다”고 조건을 제시했고 우리 요원들은 조사를 받은 직후 모두 서울로 귀환했다. 중국은 자국 내 북한 정보요원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보 관계자는 “중국 측이 당시에는 상당히 균형 잡힌 해결책을 선택했고 우리 정부에 재발 방지 등을 요구하면서 유감을 표시했지만 한중 정보 협력 등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원만히 해결했다”고 말했다. 한국군 현역 정보 장교에게 간첩죄를 적용해 3년형을 선고하고 1년 넘게 복역시킨 것은 과도한 보복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정보 관계자들은 중국의 조치가 ‘한국 정보당국의 대북 정탐행위를 막아 달라’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보당국의 미온적 대처를 지적한다. 국익을 위해 최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정보요원을 해외 감옥에 방치하고 잡범들과 함께 ‘범죄 인도’ 당하는 수모를 겪도록 한 것은 잘못이란 것이다. 군 정보기관 사이에서는 “국가정보원 요원이라면 이렇게 시간을 끌었겠는가” 하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보활동에 대한 총괄 지휘권을 가진 국정원이 제 식구보다는 군 정보요원들을 소홀하게 챙긴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2편 기사 보러가기 ▶ (2)‘김정일 訪中’ 보고한 중국인 부부 스파이는…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yjlee@joongang.co.kr]
김상진 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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