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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그의 입만 바라보는데 … 정부와 ‘물가 주파수’ 맞춘 김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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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2011년 첫 금융통화위원회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13일 금리 인상의 충격은 컸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입만 바라보던 시장은 말을 잊었다. 대부분 동결을 예측했던 터라 더했다. ‘기습 공격’ ‘연평도 폭격’ 이란 말까지 나왔다. 김형호 아이투신 채권운용본부장은 “채권 트레이더 중 80%가량이 금리 동결을 예측했다가 많게는 수십억원의 평가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김 총재의 최근 행보에서 금리 인상을 내다보긴 어려웠다.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연 간담회에서도 인플레이션을 크게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 간담회는 보통 다음달의 금리 방향을 시장에 예고하는 자리로 받아들여진다. 김 총재의 1일 신년사도 ‘내수와 수출의 동반성장을 통한 균형 발전’ 등 물가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듯했다. 시장은 ‘성장 중시’로 김 총재의 발언을 읽어냈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 경제 정책 방향을 ‘성장 5%, 물가 3%’로 정한 터였다. 한은이 정부를 거스르고 금리를 올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다.

 금통위 구성도 이를 뒷받침했다. 최근 의사록을 살펴보면 금통위원 6명 중 최도성(전 증권연구원장) 위원과 김대식(중앙대 교수) 위원은 줄곧 금리가 너무 낮다며 ‘정상화’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강명헌 위원(단국대 교수)은 반대 입장이었다. 나머지 3명은 김 총재와 이주열 부총재, 그리고 임승태 전 금감위 상임위원이다. 이들이 가세하지 않고는 금리 인상이 불가능한 구조다.

 그런데 며칠 새 사정이 확 달라졌다. 물가가 급등하고 정부가 고삐를 바짝 죄면서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3.5% 올랐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의 상한선인 4%에 가까워졌다. 도매물가는 5.3%나 올랐다. 국제 유가와 곡물가가 뛰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더 어둡다. 급기야 정부는 이날 예전엔 꺼내지 않던 ‘거시정책’ 얘기를 들고 나왔다. ‘거시정책은 물가 안정 기조를 확고히 해나가며 유관 기관끼리 협조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동준 동부증권 채권전략본부장은 “한은이 이날 예상 밖으로 금리를 올린 게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김 총재는 이날 “경기상승이 이어지고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게 매우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금리를 올렸다”고 말했다. 지난달은 물론 올 초 발언과도 온도 차가 크다.

 금리 인상이란 방향 자체엔 이견이 별로 없다. 시장도 “소동은 치렀지만 기왕 맞을 매였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되레 더 빨리 올렸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삼성증권 최석원 이사는 “지난해 최소한 서너 차례 금리를 올려 3% 선은 맞춰놓았어야 했다”며 “인상 속도가 너무 느려 기대했던 물가 억제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소신 결핍증’이다. 김 총재는 지난해 7월에도 시장과 ‘불통’했다. 깜짝 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강연 등을 통해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했지만 이후 석 달간 금리를 동결했다. 당시 청와대가 김 총재의 전격 금리 인상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원한 D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시장과 소통해야 할 중앙은행 총재가 청와대와만 소통한다”며 “그 바람에 중앙은행이 시장의 혼란을 줄여주기는커녕 되레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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