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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소용돌이, 주도권을 잡자 - 신해혁명 1 ① 중국은 왜 NO라고 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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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거친 중국’의 굴기  지난해 12월 10일 찾은 광둥성 광저우의 황화강(黃花崗) 공원. 100년 전 신해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72열사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쑨원(孫文·손문)이 이끄는 동맹회(同盟會)의 간부 황싱(黃興)이 ‘타도 청조(淸朝)’를 내세우며 광저우에서 봉기한 게 1911년 4월 27일. 황화강 사건이다. 거사는 실패했지만 혁명의 정신은 들불처럼 번져나가 그해 10월 10일 우창(武昌)에서 신해혁명을 촉발시켰다.

 그 변혁의 불길을 따라가기 위해 광저우~우한(武漢) 1068㎞를 잇는 우광(武廣) 철도에 몸을 실었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정부의 슬로건인 ‘허셰(和諧·조화)’를 이름으로 붙인 고속열차는 불과 8분 만에 시속 300㎞를 돌파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창장(長江)과 한수이(漢水)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우한(武昌·漢口·漢陽이 통합돼 武漢이 됨). 그곳에서 들른 신해혁명 기념관은 민족주의의 교육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제 타도의 대상은 더 이상 청조가 아니라 외세로 비쳐졌다. 하오바이녠(好百年) 호텔 앞에 세워진 ‘열강은 점령한 조계지를 돌려 달라’고 울부짖는 중국인들의 석상이 전율감마저 안겼다. 열차에서 만났던 사업가 리광화(李光華)의 말이 떠올랐다. “미국은 히틀러 같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뽐내며 제멋대로 행동한다.” 외세에 대한 강한 반감이 묻어났다.

신해혁명의 불길을 댕긴 후베이성 우한의 하오바이녠(好百年) 호텔 앞에 놓인 석상. ‘열강이 점령한 조계를 돌려 달라’는 중국인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우한=장세정 특파원]

 그런 반감이 중국의 신세대 사이에선 곧잘 자부심과 뒤섞여 나타난다. “중국이 엑스포를 통해 혜택을 봤다고? 아니다. 엑스포가 중국 덕을 톡톡히 봤다.” 중국의 ‘바링허우(八零後, 1980년대 이후 출생자)’ 작가 한한(韓寒·29)의 말이다. 작가 겸 레이서로도 활동하는 그는 고교 중퇴 후 18세 때 쓴 소설 『삼중문(三重門)』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등 바링허우 세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2009년엔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한의 셈법에 따른 상하이 엑스포의 대차대조표는 ‘중국이 세계를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보통신이 발달한 현대에선 엑스포가 갈수록 위축된다. 그러나 상하이 엑스포가 중국에 의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지면서 엑스포의 격을 한층 높였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가 움직이는 원리는 두 가지”라며 “하나는 글로벌 스탠더드, 다른 하나는 차이나 스탠더드”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중국의 인터넷 세계엔 그의 발언록을 수집해 퍼나르는 추종자들이 부지기수다. 그의 블로그 방문자 수는 2억 명대에 이른다. 역사적 굴욕을 겪지 않고 고도 성장의 열매를 맛보며 자란 신세대는 중국이 이제는 실력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NO라고 말하는 중국’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터넷과 융합된 바링허우 세대의 민족주의는 중국이 경제·문화대국이라는 자부심에서 출발하는 ‘신애국주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성화 봉송이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면서 신애국주의는 유감없이 분출됐다. 한한은 “그전까지는 세계가 그렇게 중국을 반대하는지 몰랐다. 경악 그 자체였다. 자발적으로 애국심이 솟구쳤다. 국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게 애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술가 쑹창(宋强)은 “신애국주의는 관방의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개혁·개방의 수혜자인 바링허우가 주체로 나선다는 점에서 1990년대의 민족주의와 다르다”고 평한다. 그는 96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NO라고 말하는 중국 열기에 불을 지폈던 『중국은 NO라고 말할 수 있다(中國可以說不)』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이다.

 ‘뿔난 중국’의 목소리를 전파하는 대표적 논객들은 주로 2009년 나온 도서 『앵그리 차이나(中國不高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 왕샤오둥(王小東), 군 장교 출신의 쑹샤오쥔(宋曉軍), 학자인 황지쑤(黃紀蘇)와 류양(劉仰) 등. 왕샤오둥은 “중국이 서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애쓰는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한다. 그는 또 미국의 ‘팔류 인간’도 중국에 오면 도련님 대접을 받는데 이는 미국이라는 일류 국가의 후광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NO’라고 말하는 중국의 꿈은 무얼까. “전 세계가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금융위기를 맞았다. 이젠 중국이 리더로 참여하는 새로운 글로벌 전략이 필요하다”는 황지쑤의 말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천하세계론’을 부르짖는 자오팅양(趙汀陽)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의 주장도 눈길을 끈다. 그는 “국가와 만민이 동등하고 중심이나 중앙이 없는 초국적 세계가 천하”라며 “국가와 국제정치를 넘어선 천하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중국이 부상한 만큼 기존의 국제 정치·경제 영역에서 펼쳐지던 ‘게임의 룰’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NO’라는 중국의 외침은 새로운 ‘중국식 질서’를 탄생시키기 위한 진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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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국심 팔아라” 중국의 언론과 출판계가 ‘애국심 팔기’에 혈안이다. ‘중화주의·애국주의·민족주의 저널리즘’이 꽃피고 있는 것이다. 그 맨 앞자리에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있다. 중국공산당의 대표적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100% 출자해 1993년 창간했지만 경영은 독자적으로 이뤄진다. 광고와 판매로만 생존해야 하는 전형적인 상업지인 셈이다. “우리는 인민일보 방침도 고려하지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독자에게 팔리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 총편집의 말이다. 선정적 보도가 불가피한 것이다.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최대 서점인 시단(西單)의 ‘도서빌딩(圖書大廈)’에선 미국의 몰락을 예견하는 『미국 침몰』 『미국 쇠락』 『미국 비판』 등의 서적과 함께 중국의 부상을 선전하는 『중국의 힘(中國力)』 『중국의 꿈(中國夢)』 『중국 모델(中國模式)』 등의 도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중국으로부터 ‘노(NO)’라는 비판을 받는 단골 국가는 일본·미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과거 중국을 침략했던 열강이다. 지난해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노르웨이도 비판 목록에 추가된 양상이다. 또 중국의 부상에 수시로 딴죽을 거는 인도도 중국에선 곧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최근엔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으로 중국을 불편하게 한 한국도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을 힘으로 누르자’는 환구시보 보도가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중국 사회는 현재 ‘여론을 자극하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중국 당국의 소극적 여론 통제→대중적 분노의 폭발→중국 정부의 상대방에 대한 강경대응 선언→상대국으로부터의 사과와 배상 획득→중국 언론의 자제 촉구’ 패턴을 보이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국가주의적 분노가 통제 불능에 빠지거나 반정부 투쟁으로 변질되지 않는 한 배출구를 열어두고 외교적 카드로 활용한다.” 클라크 랜트 전 주중 미국대사의 말이다.

특별취재팀=중국연구소 유상철·한우덕·신경진, 국제부 예영준·이충형 기자, 베이징·홍콩·도쿄 장세정·정용환· 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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