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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김지혁 기자의 전북 순창 옥천인재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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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 지역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형 기숙학원이 대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03년 전북 순창군의 옥천인재숙을 시작으로 현재 밀양(미리벌학습관)·산청(우정학사)·고령(대가야교육원) 등 전국 10여 곳에서 운영 중이다. 높은 대학 진학 실적에다 지역 인재 유출 방지 효과까지 거두고 있는 옥천인재숙을 지난 21일 찾아갔다.

글=김지혁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옥천인재숙은 철저한 생활관리로 높은 대학 진학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전주 등 대도시에서 순창군 내 학교로의 전학문의가 끊이지 않을 정도다. 옥천 인재숙의 야간 정규수업 장면. [최명헌 기자]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30분. 순창읍에 도착한 뒤 택시로 10여 분 더 달려 도착한 시골 길가에 반듯한 두 동의 4층 건물이 서 있다. 옥천인재숙이다. 오후 6시가 되자 중·고교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들어선다. 인재숙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다. 저녁식사 후 오후 7시30분부터 인재숙의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어·영어·수학만으로 이뤄진 정규수업 시작 전에는 매일 15분간 영어듣기 시험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매일 영단어 50개 암기 등 미처 하지 못한 과목별 숙제를 끝내기 위해 보통 오후 7시 이전에 모두 교실에 들어간다. 고2·고3은 문·이과로, 중3·고1은 지난달 치른 인재숙 입사(入舍) 시험 중 수학 성적에 따라 상·중·하 수준별로 교실이 나뉜다. 인재숙에선 학년별로 50명씩 총 200명이 공부한다. 순창군 내 중·고교생 수의 20%에 가까운 수치다.

정규수업이 시작되자 학부모들도 인재숙으로 모여들었다. 이날 4주에 한 번꼴로 열리는 학부모 회의가 있어서다. 학부모 운영위원 선임과 자녀 학업 상담이 이날의 주요 안건이었다. 운영위원 선임과 2012학년도 입시정책 변화 강연에 이어 예비 고3 학부모 대상의 진학상담이 시작됐다. 예비 고3 담임을 맡은 강사는 모두 대성·종로 등 유명 학원에서 수년간 진학 지도를 하던 베테랑이다. 90분간 진행되는 정규수업이 끝나고 10분간의 쉬는 시간 동안 자녀와 만나 회포를 푸는 시간도 마련됐다. 2주에 한 번씩 집에 가는 데다 평소 연락은 공중전화로만 할 수 있어 10분간의 짧은 만남이 아쉽기만 하다.

복도에서 학습법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 [최명헌 기자]

쉬는 시간이 끝나고 예비 중3 교실에 들어갔다. 내년에 학교에서 배울 ‘제곱근의 근사값’에 대한 수업이 한창이다. 학교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과도한 선행학습은 하지 않는다. 다만 방학 때를 이용해 다음 한 학기 과정 정도만 미리 공부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진도에 맞춰 심화학습을 한다. 인재숙 초기에는 학습방법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학교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교와 의사소통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 인재숙에서 출간된 교재를 학교에서 보충교재로 활용할 정도다.

인재숙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모두 강사들이 직접 만들었다. 인재숙의 모든 강사는 의무적으로 3개월마다 교재를 새로 쓴다. 매년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동시에 강사 평가를 통해 재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강사들도 치열하게 교과 연구에 힘쓰는 분위기다.

인재숙의 정규수업은 오후 10시35분에 끝난다. 이후 간식을 먹고 오후 11시15분부터 영어듣기평가와 단어 시험, 다시 자정까지 보충수업·특강·첨삭지도가 이뤄진다. 중3·고1은 오전 1시까지, 고2·고3은 오전 2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기상시간은 오전 6시30분이다.

인재숙의 규율은 엄격하다. 특히 인재숙 내 이성 교제나 휴대전화 소지, 무단 이탈 등에는 엄중 경고 후 퇴사 조치까지 내려질 수 있다. 또 매 주말 학습평가를 실시해 한 과목이라도 3개월 내 3회 이상 과락하게 되면 퇴사해야 한다. 과락 점수는 60점이다. 한 번 퇴사하면 매년 11월에 실시하는 입사 시험을 통과해야 다시 들어올 수 있다. 보통 중3 때 입사해 4년 동안 인재숙에서 생활하지만 매년 10%정도가 중도 탈락한다.

엄격한 생활·학습 관리는 대학진학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원 3년 만인 2006년에는 순창군 내에서 15년 만에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매년 졸업생의 40% 정도를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진학시킨다. 나머지 학생도 대부분 전남대·전북대·교육대 등 지방 국립대로 진학한다.

우수한 진학 실적에 대한 입소문이 나자 외부 전입생들도 크게 늘었다. 인재숙 운영 전에는 순창군 외 지역으로 전출하는 비율이 지역 전체 학생의 19%정도였는데 지금은 역전됐다. 올해는 지역 내 고교 신입생 전체의 22%인 61명이 다른 지역에서 순창군 내 학교로 전학했다. 과거엔 순창군 내 2개 고교의 신입생 모집정원을 채우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2개 학교의 모집정원을 30명이나 늘렸는데도 다 수용을 못 할 만큼 호응이 뜨겁다. 신장호 원장은 “입사 시험이 다가오면 광주·전주 등 대도시에서 순창군 내 학교로의 전학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며 “인재숙 덕분에 지역의 교육환경이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방순정(48·전북 순창군 구림면)씨는 아이를 인재숙에 입사시키기 위해 2년 전 광주에서 이주했다. 방씨는 “이곳에 오면서 아이의 성적이 크게 올랐다”며 “학습법을 배우고 목표가 생기면서 아이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조재호(46·전북 순창읍)씨도 “이런 지역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라며 “다만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범대가 목표라는 권소명(순창고 2)군은 “가능성의 극한에 도전하라는 원훈을 실감하고 있다”며 “꿈울 꾸게 해 준 이곳이 나에겐 정말 부모의 품과 같다”고 말했다. 최기훈(순창고 2)군은 “인재숙에 들어와 성적이 30% 정도 올랐는데 여기엔 나와 비슷한 사례가 많다”며 “이렇게 계속하면 목표인 연세대에 합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옥천인재숙 들어가려면

입사 대상 예비 중3~예비 고3
입사시험 매년 11월 20일께
입사일 매년 12월 초
선발 방법 순창군 학생 대상 국어·영어·수학 필기시험 후 학년별 성적 상위 50명 선발(단, 과목당 40점 이하 과락)
비용 기숙사비·수업료 전액 무료(단, 매월 식대 14만원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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