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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장 40명 모였다 …‘샌드위치 코리아’ 다시 걱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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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2일 오전 8시.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앞이 분주해졌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삼성그룹 사장단협의회에 참석하는 사장들이 연이어 사옥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단협의회는 매출 220조원, 직원 28만 명(해외 10만여 명 포함)인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의 최상위 협의기구다. 회의는 삼성전자 건물 39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날은 삼성전자의 이윤우·최지성 부회장과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비롯해 지대섭(화재), 박종우(전기), 윤순봉(석유화학), 윤부근(전자), 최치훈(카드), 박상진(SDI), 고순동(SDS), 이헌식(코닝정밀소재), 김낙회(제일기획), 황백(제일모직), 서준희(에스원) 사장 등 40여 명의 사장들이 참석했다. 최근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는 대개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재한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있을 때는 그가 회의를 주관한다. 이수빈 회장은 월 1회 정도 나온다. 이날은 이 부회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정기영 경제연구소장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이 ‘2010년 한국경제의 회고와 향후 과제’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이 부회장이 짤막한 인사말로 회의를 시작했다. (사장단협의회는 사장들이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이건희 회장이 퇴진한 뒤 사장단협의회가 공식 기구가 되면서 달라진 모습이다. 외부 전문가나 주요 사장들이 그 시점의 이슈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고 사장단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다. 이 때문에 ‘재계의 풍향계’라는 평가도 있다. 외부 전문가 초청강연 계획은 1년 단위로 미리 짜놓으며 대개 두 달 전에 이들을 섭외한다. 올해는 25명이 강연했다. 최상위협의체인 만큼 그룹의 현안도 다룬다. 지난 2월 이건희 회장의 복귀를 요청키로 결정한 것도, 일본 도요타자동차 리콜사태를 계기로 4월에 ‘절대품질’ 확보에 대한 결의를 다진 것도,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이 최근 “회장님은 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계신다”며 이건희 회장의 메시지를 전한 것도 바로 이 자리였다.)

 삼성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를 이끄는 정 소장은 사장단협의회의 단골 강사다. 지난 9월 회의 때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3.8%로 둔화될 것이라며 내년 경제 낙관론에 대해 경종을 울린 이도 정 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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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단협의회는 올해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이날 협의회가 올해의 마지막 회의인 셈인데, 회의 주제를 ‘향후 과제’로 잡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발탁인사를 통해 세대교체를 이룬 삼성이 2011년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 소장은 이날 내년 한국 경제의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재정 부실화 방지 ▶금융시장 안정(자본유출입 규제) ▶신산업의 경쟁력 제고 ▶성장잠재력 확충 위한 공격적 투자 ▶양극화 해소 등 사회통합 증진이었다.

 사장들을 긴장시킨 대목은 신산업의 경쟁력 제고였다. 정 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한·중·일 3국은 자본재·소재는 일본, 부품은 한국, 조립은 중국이 맡는 분업체제 속에 윈윈 관계를 유지했지만 위기 이후 경쟁관계로 전환했다”며 “2011년은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대규모 투자로 한국을 위협하고, 일본은 주력시장을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전환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정 소장은 특히 “중국의 과학기술 분야 인력은 4200만 명으로 남한 전체 인구에 버금가고, 일본의 신산업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한국의 다섯 배 수준”이라며 “한국은 신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중국에 열세”라고 진단했다. 미래 생존이 걸린 신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사장단 중에는 정 소장의 사회갈등 우려를 메모하는 이들도 많았다. 소득 불균형이 빠르게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4대 강 사업, 무상급식, 골목상권 등을 놓고 갈등이 지속되리라는 전망이었다.

 삼성 사장들은 정 소장의 발표를 묵묵히 들었다. 발표 뒤 사장단의 질의응답은 별도로 없었다. 이인용 미래전략실 부사장은 “원래 질의응답이 많은 회의는 아니다”면서 “평소엔 사장 두세 분의 질문이 있는데 이날은 질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장단협의회는 약 1시간 만에 끝났다. 삼성 관계자는 “가벼운 주제일 경우엔 30~40분 걸리기도 하지만 경제·경영 현안을 다룰 때는 회의가 1시간을 넘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내년 1월 3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삼성그룹 신년하례회에 참석한다. 2007년 이후 4년 만이다. 이 행사에는 수도권 계열사의 상무급 이상 임원 1000여 명이 함께한다. 이 회장은 여기서 2011년의 경영 화두가 담긴 신년사를 밝힐 예정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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