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권위의 중앙시조대상 올해 수상자들이 가려졌다. 제29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으로는 오승철 (53) 시인의 “셔?”가 선정됐다. 중앙시조신인상은 이태순(50) 시인의 ‘저녁 같은 그 말이’에 돌아갔다. 중앙시조 대상과 신인상은 각각 등단 15년 이상, 5년 이상 10년 미만의 기성 시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시조 중 최고의 한 편을 가린다. 김세진·우은숙 시인이 예심을 맡아 최근 1년간(2009년 12월∼2010년 11월)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시조 작품을 추렸다. 본심은 시조시인 유재영·박기섭씨, 평론가 장경렬(서울대 영문과 교수)씨가 맡았다.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해당되는 제21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은 김성현(51)씨의 ‘겨울, 바람의 칸타타’가 차지했다. 시상식은 22일 오후 6시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사 로비 1층 연수실에서 열린다.
올해 중앙시조대상은 ‘제주’에 돌아갔다. 최고의 시조 한 편에 상에 돌아가는 만큼 당연히 시인의 이름이 빛나야겠지만 이번 만큼은 시인의 출신 지역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만큼 수상자 오승철(53) 시인의 이력과 시 세계는 제주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오승철 시인은 “변하는 시대상을 시조 안에 담아내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오씨는 제주 시조단의 터줏대감 같은 사람이다. 제주도 시인으로는 처음으로 중앙 일간지의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중앙시조대상을 제주 시인이 수상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는 10년 전인 2000년 제주 지역 문인들의 시조공부 모임인 ‘정드리문학회’에 창립 때부터 관여해 지금까지 좌장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시조는 대부분 제주도의 한 많고 바람 많은 역사, 오름과 같은 자연 환경 등을 노래한다. 수상작인 “셔?”만 해도 그렇다. 어김 없이 오름이 등장하고 오름을 수놓는 노루귀·까치무릇 등 말맛이 아름다운 봄꽃들 이름이 등장한다. 특히 제목으로 쓰인 “셔?”는 육지에는 없는 제주 고유의 말이다.
13일 수상 인터뷰를 위해 제주도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오씨에게 물었다. 사투리 “셔?”의 활용에 대해. 오씨는 “셔?”에는 대략 세 가지 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부를 물을 때나 찾고자 하는 사람이 집에 있는지 확인할 때, 또는 그냥 아는 집 앞을 지나가다가 집이 비어 있는지 궁금할 때 쓰는 말입니다.”
“셔?”의 억양과 발음의 세기는 용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듣는 사람이 손윗사람이냐 아랫사람이냐에 따라서도 억양이 달라진다.
어쩌다 달랑 한 음절만 남은 의문문 “셔?”가 여러 가지 질문을 품게 된 것일까. 오씨의 해석이 재미 있다. “바람 거세 먹고 살기 힘든 제주에서 빨리 묻고 가던 길을 신속하게 가려다 보니 말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수상작의 마지막 수에 표현된 대로다. 이심전심으로 통해야 쓸 수 있는 말이다.
오씨는 “지난 주말 백약이 오름에 올랐다”고 했다. 오름은 과거 폭발한 적이 있는 화산이다. 내부의 고통을 분출한 적이 있는 오름은 오씨에게 4·3 사건 등 상처 많은 제주도 역사를 상징한다.
오씨는 “오름에 올라 삼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지금까지의 틀을 깬 새로운 시, 제주도의 좁은 한계에서 벗어난 시를 쓰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셔?”는 음수율을 엄격히 지킨 정격(正格) 시조이면서 지역색을 살린 신선한 작품이다. 오씨는 벌써 스스로의 틀을 깨는 중이다.
“셔 ?”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 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셔?”
글=신준봉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약력=1957년 제주 위미 출생. 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개닦이』,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사고 싶은 노을』, 『누구라 종일 홀리나』. 한국시조작품상·이호우시조문학상·유심작품상 등 수상.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청 근무.
[심사평] 독특한 발상·서정 … 현대 시조 문학의 값진 수확
제29회 중앙시조대상 및 신인상 후보 작품들과 만나는 일은 모든 심사위원들에게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선고 과정을 거쳐 올라온 대상 후보작 12인의 작품 122편, 신인상 후보작 13인의 작품 116편에 가운데는 탁월한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모든 작품을 정독한 다음, 대상 후보로 6인을, 신인상 후보로 3인을 각각 선정하였다. 그들의 작품을 놓고 오랜 시간 토의와 검증 및 비교와 분석의 과정을 거친 결과,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한결같이 높이 평가를 받은 오승철의 “셔?”를 대상 수상작으로, 이태순의 ‘저녁 같은 그 말이’를 신인상 수상작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대상 수상작인 오승철의 “셔?”는 시적 발상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완성도 역시 대단히 높은 작품이다. 단순한 존칭 보조어간 하나로 제주도라는 지역의 정서적 특성을 아주 잘 살려냈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 작품은 시인의 오랜 시력과 자기 갱신 의지가 일궈낸 빛나는 성취이자 시조 문학의 값진 수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신인상 수상작인 이태순의 ‘저녁 같은 그 말이’는 한국적 서정의 윤곽을 선명하게 담고 있는 탁월한 작품이다. 시인이 짜낸 서정의 피륙의 결이 비할 바 없이 고르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탁월한 언어 감각과 적절한 비유를 통해 현대시조의 서정적 공간을 넓힌 작품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거듭 말하지만, 올해의 후보작에는 탁월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특히 뛰어난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두 분에게 심심한 축하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내년에도 올해처럼 시조 시단이 풍요롭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유재영·장경렬·박기섭(대표집필 장경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