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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미FTA 어떻게 임했나 … 김석한 재미 통상전문 변호사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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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재미 통상전문가인 김석한 변호사가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한·미 FTA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FTA 추가협상이 타결된 데는 “한·미 정상의 친밀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오종택 기자]

같은 사안이라도 나라 밖에서 보면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얼마 전 타결된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도 그렇다. 국내적 시각으로 우리끼리 아옹다옹하다간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추가협상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 시야를 넓혀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한·미 FTA를 미국은 어떤 생각으로 임했을까.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통상전문가 김석한(61) 변호사를 만나 밖에서 본 한·미 FTA에 대해 들어봤다. 업무차 방한한 그는 8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이번에 타결된 FTA 추가협상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적으로 한국에 좋은 이벤트다. 추가협상에서 한국은 스마트했다. 100% 만족스러운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한국이 자동차 부문에서 양보했다는 시각이 많던데, FTA는 단기적 손익보다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아쉬운 점이 일부 있지만 크게 보면 잘된 것이다. 몇십 년 뒤에는 한·미 FTA의 자동차 조항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한국 야당에선 ‘퍼주기 협상’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추가협상은 아무래도 한국이 수세적 입장이었는데.

 “FTA를 무역협상으로만 봐선 안 된다. FTA는 정치적 협상이기도 하다. 지도자도 정치적 이익과 목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FTA에 반대하는 민주당 핵심 지지그룹의 의견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그는 한·미 FTA를 ‘문제 많은(flawed) FTA’라고 비판했었다.”

 -왜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하게 됐나.

 “오바마 대통령은 올 초 5년 안에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수출이 늘어야 일자리도 많아진다. 더 중요한 것은 아시아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커가는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FTA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까지 내세울 만한 자신만의 무역정책이 없었다. 대외정책 성공 사례도 별로 없었다. 한·미 FTA 타결로 정치적 승리를 선포하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뒤 곧바로 추가협상을 타결 짓자 한국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내줬다는 시각이 있다. 추가협상에서 한국이 양보한 것은 미국 항공모함의 ‘서해 출장비’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거기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도 쇠고기·섬유·농산물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려고 했지만 FTA 타결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요구 수위를 되레 낮췄다고 본다. 이번 협상에선 경제적 이익을 따지는 무역대표부(USTR)의 목소리만 나온 게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도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미국에서 FTA는 국내 일자리와 경제 이슈였는데 이게 외교안보 이슈로 승격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협상을 깰 수 있는) 쇠고기 추가개방 요구를 ‘봉쇄’할 수 있었다. 쇠고기 주산지인 몬태나주 출신의 맥스 보커스(재무위원장) 상원의원도 협상 결과에 ‘실망했다’고 했지만 ‘반대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건 큰 진전이다. 결과적으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협상 타결의 타이밍으로 잘 활용한 셈이다. 이번에 타결하지 못했다면 미국의 2012년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FTA는 사실상 물 건너갔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연평도 피격이 FTA 협상 타결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연평도’는 안보와 경제가 따로 갈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김 변호사는 “한·미 FTA로 무역거래가 늘고 미국의 대한국 투자가 많아지면 결국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stake)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FTA가 한·미 안보동맹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는 유럽에서 영국이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인 것처럼, FTA 덕분에 한국도 ‘아시아의 영국’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미 FTA 협상 주역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야당의 반대가 잦아들 것 같지 않다. 한국의 FTA 반대 여론을 뒤집으면 결국 미국이 협상을 잘했다는 뜻이니, 한국에서 어느 정도 반대 여론이 있는 게 미국의회의 비준 속도를 높일 수 있지 않나.

 “죄송한 얘기지만 미국은 한국의 반대 여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미 의회의 비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다. 오히려 FTA 반대 여론이 (2008년 쇠고기 수입으로 불거진 촛불 사태처럼) 반미정서로 흐를 경우 미국 내 분위기가 나빠질 수도 있다. 한·미의 FTA 반대 그룹들이 서로 연대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의회 비준에 도움이 안 될 거다. FTA 반대론자는 언제나 반대만 한다. 강성(hardcore)이다.”

 -미 의회 비준은 낙관해도 되나. 11월 중간선거에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했지만 공화당 바람의 주역인 보수주의 유권자 운동단체 ‘티파티(Tea Party)’는 자유무역에 비판적인데.

 “FTA에 대한 찬성표를 계산해보면 비준이 통과될 만큼은 된다고 본다. 주미 한국대사관도 열심히 뛰었다. 티파티가 공화당 주류에 대한 반발로 나왔지만, FTA에 관한 당론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새내기 정치인들이다. 민주당이 지지층인 노조의 시각을 받아들여 공화당보다 보호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편이지만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무역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집권세력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가 아니라 경제가 얼마나 힘드냐다. 경제가 나쁘면 보호주의 정책을 취하게 마련이다.”

 -언제 미국 의회의 비준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나.

 “대통령이 의회에 보내면 90일(의회 회기일 기준) 이내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상·하원이 동시에 진행하는 방법도 있는 만큼 더 빨라질 수도 있다. 미국은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에 중요한 결정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으니 6~7월 중 끝날 수도 있다.”

 -미국육류수출협회도 FTA 환영 성명을 냈던데.

 “FTA 서명 이후 지금까지 3년 반 동안 FTA에 찬성하는 대부분의 업계는 워싱턴의 로비스트가 돼서 한국과 함께 뛰었다.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뛴 것이다. 원래 워싱턴에서 한국 로비의 힘은 미약했다. 이번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 갑자기 문제가 터졌을 때 도와달라고 달려가는 것은 로비가 아니다. 로비의 힘은 이익집단에서 나온다. 이들과 평소에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한다. 이번에 한국이 얻은 큰 자산 중 하나다.”

글=서경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김석한 변호사=1949년 서울생. 중학교 3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났다. 길포드대에서 정치학·경제학을 공부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조지타운대에서 법학박사(JD)를 받았다. 81년 아널드 앤드 포터 법률회사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한국산 컬러TV의 덤핑 사건을 맡은 이후 대미 통상 전문가로 떠올랐다. 90년 애킨검프로 옮겼고, 지금은 이 회사의 시니어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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