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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미 FTA는 비준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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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경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은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자. 그래야만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서 좀 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에서 양보하고 돼지고기와 의약품에서 양보를 얻어 낸 손익계산서를 돈으로 환산하면 한국이 손해 보는 장사라고 하는 비판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기존합의에서 이룩된 이익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동차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미국에 42만 대가 수출되었고 수입은 7000대에 미치지 못했다. 비록 미국의 자동차 관세철폐가 4년 뒤로 미루어졌으나 높은 수출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고 미국 자동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비추어 볼 때 대미 흑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압도적인 경쟁우위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농산품처럼 민감 품목인 점을 고려하면 수정된 자동차협정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발효 즉시 무관세화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4년 후에 2.5%의 관세가 없어지는 것이고, 나아가서 미국 자동차업계와 소비자들의 한국차에 대한 거부감을 달랠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2007년 FTA 협상 타결 직후의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61.5%였다. 한·미 간의 전체적인 이익균형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실리를 잘 따져서 일단 비준하고 피해산업에 대한 대책 마련에 집중하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슬기로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200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지배하게 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미 FTA를 비롯한 통상이슈는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게 되면서 오마바 대통령도 수출 증대가 일자리 창출에 긴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지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되찾으면서 어떻게든 한·미 FTA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커졌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과 EU의 FTA 협상 타결도 미국을 압박하는 요인이 됐다.

 협상 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아쉬운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공세적으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추가협상 시기를 미루었으면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에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가 개원하면 쇠고기 추가 개방 요구가 더욱 거세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비준안 상원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보커스 상원재무위원장은 지금도 쇠고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피력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강경파와 자동차업계를 달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협력이 필요했다. 물론 냉정하게 국익을 확보해야 하는 국제협상에서는 상대방의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최대한 얻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한·미 간의 특별한 경제-안보관계를 고려해 이 정도의 결과를 얻어내고 FTA를 빨리 발효시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본다.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표류하는 상황에서 FTA 경쟁은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동북아와 동아시아는 선진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역내교역을 확대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한국이 중국·일본과 FTA를 추진하고 지역경제 통합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데 있어 미국과의 FTA는 매우 긴요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FTA를 전제해야 하는 것이 한·미 동맹의 현실이다.

 연평도 피격 이후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확대되지 않고 금융시장과 수출이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야는 정쟁을 중지하고 거시적이고 전략적인 입장에서 비준을 해 주기 바란다.

이경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