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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 없이 학생지도 잘 하는 학교들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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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체벌에 대한 찬반 공방이 뜨겁다. 교육청이 내놓은 ‘체벌금지 생활지도 매뉴얼‘도 어수선한 일선 학교 현장을 정리하기엔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과연 체벌 외에는 학생을 지도할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체벌 없이 다른 방법으로 학생들을지도하고 있는 학교 사례들을 살펴봤다.

#용인 흥덕고
벌점 받은 학생은 교사와 1시간 동안 운동장 산책

흥덕고에는 상벌점제가 없다. 규칙을 어겼을 경우 벌점 대신 해당 교사와 함께 운동장을 1시간 동안 걸어야 한다. 교실 밖으로 나가 교사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빗장을 연다. 인성교육도 강화했다. 함께 텃밭을 가꾸고 굿네이버스(자원봉사단체)와 연계해 전교생이 봉사활동을 함께 한다.

흥덕고 이만주 학생복지부장은 “체벌 대신 대화를 하다 보니 처음엔 지도에 시간도 걸리고 불편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선생님과 학생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갈등이 사라져 생활지도에 효과가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폭력 등 규칙위반 수위가 높을 경우엔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해당 학생을 처벌한다.

#서울 구로고
방과후 ‘비전업’교실로 문제학생 총체적 관리

방과 후 구로고엔 특별한 교실이 열린다. 이름하여 ‘비전 업(vision up)’ 교실. 1년 반 전에 시작된 성찰교실이다. 벌점을 20점 이상 받은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보충학습을 한다. 흡연교육과 진로교육도 한다. 수업태도가 산만한 학생들에겐 ADHD 증후군 검사 등 성격 검사까지 진행한다.

구로고 김동철 교감은 “학생들은 방과 후 학교에 남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 방법이 잘 통한다”고 말했다. 간혹 교실에 남지 않고 도망가는 학생들이 생기면 생활지도부 교사가 따로 불러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한다. 그러나 상담인력이 부족해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구로고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상점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서울 한울중
사랑의 쪽지 오가는 훈훈한 성찰교실

한울중 성찰교실엔 소통이 있다. 전문 상담교사가 배치돼 있어 언제든 학생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낸 아이디어가 반영돼 교과 부족부분을 ‘깜지(흰 종이에 글씨를 빽빽이 써넣어 흰 공간이 보이지 않도록 글을 쓰는 것)’를 써 보충학습 한다.자신에게 벌점을 준 교사에게는 ‘사랑의 쪽지’를 쓴다. 교사는 쪽지에 답글을 정성껏 달아준다. 학생회가 배달부를 맡아 사랑을 나른다. 물론 성찰교실을 체벌에 비해 가볍게 생각,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학생도 있다. 한울중 박수찬 생활지도부장은 “사제 간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체벌 대신 ‘소통’을 택했다”며 “소통이 활발해 지니 학생들의 행동이 점차 개선된다”고 말했다.

한울중은 수업지도법도 학생중심으로 바꿀 계획이다. 학생들의 수업참여도가 높아져 학생과 교사간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 민족사관고
벌점이 학교생활 전방위로 불편함 미쳐

규칙을 어긴 민사고 학생들은 학생 법정에 회부돼 벌점을 받는다. 학생 법정의 재판관도 학생이다. 억울한 경우 변론을 펼쳐 벌점을 경감받을 수도 있다. 벌점을 받으면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벌점으로 인한 봉사시간이 8시간 이상 남았을 경우, 수업에 들어가지 못한다. 1년에 25점 이상 벌점을 받으면 학생회뿐 아니라 학급 임원이 될 수도 없다. 장학금도 받을 수 없다. 벌점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체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민사고 성헌제 학생부장은 “학생법정 시스템으로 학생 스스로 규율을 적용해 규칙을 지키도록 했더니 학생과 교사 간 갈등도 줄었다”고 말했다.

# 한국외국인학교(KIS)
수업방해나 반항은 상상도 못해

‘체벌’이 원래 없었던 외국인학교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한국외국인학교(이하 KIS)에서는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에게 반항한 일은 개교 이래 한번도 없었다. 모든 행동이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학생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벌점내역은 생활기록부에 상세히 기록된다. 미국 대학은 성적 못지 않게 인성도 중시하기 때문에 벌점이 대학진학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KIS 화찬권 이사는 “성적만을 중시하는 국내 현실이 인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면 체벌의 필요성도 사라질 것”이라며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KIS는 입학 시생활규칙과 규칙위반에 대한 세부 처벌사항을 담은 가이드북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충분히 교육한다. 학생이 반복된 잘못을 하거나 사소하더라도 폭력을 행사할 경우 무조건 학부모를 호출한다.

교사, 학생, 부모 3박자가 잘 맞아야

체벌 없이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학교들은 모두 체계적인 프로그램들을 갖추고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 소통과 대화가 활발하다.“교육은 학교 혼자 담당하는 게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 협력할 때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다. 부천 소명여고 박해성 교감은 “부모를 학교로 호출해 학생의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상담을 하고 나면, 부모가 자녀의 생활지도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설명]17일 용인 흥덕고 이만주 교사가 체벌 대신 학생과 함께 산책을 하며 대화를 하고있다.

< 설승은 기자 lunatic@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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