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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코리아, 수술의 힘(Top MDs of Korea) ③ 심장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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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김영훈 교수(왼쪽)가 부정맥 심방세동 환자의 시술 부위를 모니터로 확인하며 전극도자절제술을 시행하고 있다. 부정맥의 원인이 된 위치를 찾아 고주파 열에너지로 이상 심장박동을 차단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어려서부터 젓가락질로 미세한 손동작을 익혀온 한국인의 수술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중앙일보와 아리랑TV는 공동으로 의학 다큐멘터리 5부작 ‘메디컬 코리아, 수술의 힘(Top MDs of Korea)’을 제작했다.

188개국 8250만 시청 가구를 확보한 글로벌 방송네트워크 아리랑TV는 이달 8일부터 매주 월요일 8개 국어로 다큐멘터리를 송출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번 기획의 일환으로 ‘건강한 당신’ 지면을 통해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3부 주제는 ‘심장수술: 심장의 마이스터’다. 방송 날짜는 22일(월) 저녁 9시다.

캐나다선 “수술 안 돼”…한국와서 성공해

“증상은 심해지는데 방법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가 ‘한국이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어요.”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간 안규익(55)씨. 그는 부정맥 중에서도 심각한 심방세동 환자다. 심장근육 속 전기회로가 망가져 심장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쿵쾅댔다. 혈액 순환이 안 돼 어지럽고 숨이 찬 증상이 나타나다 2008년부터는 졸도해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언제 뇌졸중이나 심장마비가 올지 모르는 상황. 안씨는 늘 불안했지만 현지 의사들은 안씨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이미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 약물 치료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안씨는 수소문 끝에 난치성 심방세동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고대의대 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김영훈 교수를 찾았다.

 6월 30일 오후 4시. 안씨는 4㎜의 가느다란 카테터를 대퇴정맥으로 넣고 심장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신호를 보낸 곳을 고주파 열에너지로 지지는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았다. 김 교수는 “얇고 긴 바늘(카테터)이 뛰고 있는 심장의 중격을 지나야 하는데 안씨는 중격을 메워주는 수술을 받았던 터라 통과가 쉽지 않아 고난도 수술”이라고 설명했다. 4시간의 수술로 10년 만에 정상 맥박과 심전도를 되찾은 안씨는 복용하던 약도 끊고 건강하게 캐나다로 돌아갔다.

풍선·스텐트 시술, 우리나라가 리더 역할

의료진이 얼마나 능숙하고 빠르게 처치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것이 심장수술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의사의 실력을 믿지 못해 해외로 나가는 환자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해외에서 소문을 듣고 한국을 찾아온다. 대한민국 심장수술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한흉부외과학회 안혁 이사장(서울대병원 교수)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심장수술은 미국·유럽 등 의료 선진국과 차이가 없을 만큼 발전했다”며 “특히 인공심폐기 없이 진행하는 관상동맥우회술은 빈도와 성적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심장수술의 발전은 환자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심장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 대한심장학회 임종윤 회장(한림대성심병원 순환기내과)은 “외국에서 개발된 의료기술이나 장비라 하더라도 우리가 워낙 빨리 도입해 익히기 때문에 수술 테크닉의 발전 속도가 의료 선진국과 똑같다”고 했다.

 흔히 풍선·스텐트 시술로 불리는 경피적 관상동맥중재술(PCI)은 우리나라가 세계 리더 역할을 할 만큼 발전했다. 1977년 전 세계에서 관상동맥중재술을 제일 처음 시술한 스위스 베른대학병원의 순환기내과장 버나드 마이어 교수는 “한국은 관상동맥중재술을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정상에 올라섰다”며 “특히 어떤 복잡한 수술도 중재술로 치료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거꾸로 배워온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심장수술도 점차 최소 침습적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 흉부외과 박국양 교수는 “시야가 좁은 데서 사용할 수 있는 가늘고 긴 수술도구들이 선보이면서 흉터가 크게 줄어 여성 환자의 미용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종래 가슴 중앙을 15~20㎝ 세로로 절개하던 심방중격결손증 등 선천성 심장질환 수술이 유방 아래쪽 5㎝만 절개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20여 년의 성장 속도가 놀랍다. 예컨대 선천적으로 심장이 반쪽밖에 형성되지 않아 동맥과 정맥 피가 섞이는 경우, 심장 외부에 다른 혈관을 연결해 혈류 방향을 구분해주는 폰탄수술을 한다. 소아 심장에 하는 고난도 수술임에도 서울대병원과 세종병원이 1996~2006년 수술한 200명은 10년 생존율이 92%에 이른다.

 고령 환자의 건강 상태에 맞는 수술과 관리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1994~2004년 80세 이상 20명에게 심장수술을 한 결과 2년 생존율이 80%였다.

관상동맥우회술 빈도·성적 세계 최고

대한의학회가 2005년 정형외과·종양내과 등 국내 26개 전문 진료과의 의료기술을 선진국과 비교 분석한 결과,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와 순환기내과의 성적이 가장 높았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 수준을 100점으로 봤을 때 흉부외과는 96.1점으로 1위, 순환기내과는 94.4점으로 2위였다. 여러 평가항목 중 수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눈에 띈다. 막힌 혈관을 뚫고 연결하는 혈관성형술과 딱딱하게 굳은 심장 판막을 교체하는 판막성형술은 100점이었다.

 7월 21일 수술실.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환자 이기복(63·경북 구미시)씨의 팔에서 동맥의 일부를 떼어내 심장의 관상동맥에 연결하고 있다. 막힌 관상동맥에 새 옆길을 만들어주는 관상동맥우회술이다. 이제는 대동맥판막성형술을 할 차례. 심장에서 열고, 닫히는 과정을 반복하며 혈액을 내보내는 판막도 좁아진 상태였다. 송 교수가 완전히 석회화돼 딱딱하게 굳은 판막을 확인하고 뜯어낸다. 여기에 환자의 심낭 조직으로 기존과 똑같은 크기의 새 판막을 만들어 연결했다.

 송 교수는 “대동맥 판막의 움직임은 대동맥 근부와 맞물려 있어 판막뿐 아니라 늘어난 근부도 함께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혈관 안에 작은 링을 넣고 꿰매 대동맥 근부의 둘레는 줄이고 본인의 심낭으로 판막엽을 만든다. 이 수술법은 송 교수가 직접 고안해 지난 3월 유럽연합의 특허를 받았다.

일본·대만·인도 의사들 기술 배우러 와

이제는 심장수술을 배우러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의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건국대병원에는 일본·대만·인도·파키스탄 의사들이 찾아와 송 교수의 수술 원리와 기법을 배워갔다.

 고대의대 안암병원에는 김영훈 교수의 부정맥 치료법을 배우겠다는 젊은 의사들이 일본·홍콩·인도네시아 등에서 끊임없이 찾아와 전임의 과정을 밟고 있다. 미국·일본·동남아 등에서 김교수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는 외국인 환자는 매년 20여명이다.

 의사들의 기술도 향상됐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병원들의 노력과 관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흉부외과학회 오중환 홍보이사(연세대 원주의대)는 “병원마다 심장수술에 필요한 인공심폐기나 감시모니터 등 고가 장비를 많이 구입하고 응급상황에 대한 진료시스템을 확실히 해 의료진의 실수를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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