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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잘 곳 없어 시작한 코미디,어이구야~ 나라에서 훈장도 주네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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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02면

1 22일 임희춘씨가 수상하는 보관문화훈장

대한노인복지후원회 사무실은 지하철 합정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18일 오전, 나무 현판이 달린 주택가 건물의 1층 여닫이 철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77). 아니, 대한노인복지후원회 임진상 회장. 특유의 눈웃음은 여전했다. 마침 조간신문에서 자신의 기사를 찾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임희춘·신구·고은정씨에 보관문화훈장/첫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32명 선정’. “어이구야~, 훈장이라니…·.”

22일 제1회 대중문화예술인의 날, 코미디언 최초 보관문화훈장 받는 임희춘씨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그의 유행어 ‘어이구야’를 목전에서 들으니 새삼 세월이 역류하는 듯했다.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와 TBC ‘고전유모어극장’이 떠올랐고, 김희갑·송해·구봉서·배삼룡·서영춘·이기동·양훈·양석천·백남봉·남보원·최용순·심철호·남철·남성남 같은 이름과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선배는 구봉서씨밖에 없네. 송해씨는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연예계는 3년 후배야.”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대뜸 선배 얘기부터 꺼냈다. 선배 덕분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를 이끌어준 선배는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 김희갑(1923~93)씨와 구봉서(84)씨였다.

2 ,젊은 날의 임희춘씨 3,극장식 코미디 입장권 4,왼쪽부터 임희춘, 구봉서, 서영춘씨

“6·25때 피란 가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혼자 서울로 돌아와 구두닦이·냉차장수 등 안 해본 일이 없어요. 그러다 1952년 배우 모집 광고를 본 거야. ‘숙식 제공’이란 말에 무조건 찾아갔지. 극단 동협엔 엄앵란씨의 어머니인 노재신씨, 주증녀씨 같은 스타 배우도 있었어요. 석 달 연습하고 명동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리는데, 내 차례인데 긴장돼서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거야. 무대감독이 화가 나서 뒤에서 냅다 발길질을 했어요. 그러니 어떡해. 멀대 같은 놈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떠밀려서 불쑥 나왔는데 대사도 버벅대고 덜덜 떠니 심각한 대목에서 웃음바다가 된 거야. 그때 구경 와 있던 김희갑씨가 날 본 거지.”

당시 김희갑씨는 명동 중앙극장에서 ‘천하일색 서시’ 번안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5분 정도 나와 슬랩스틱 연기로 좌중을 웃기던 그는 임씨에게서 코미디언의 가능성을 간파했다. “너 나 따라다니면서 일 배워보지 않을래?” 김희갑의 ‘가방모찌’가 된 그는 일정과 대본과 의상까지 꼼꼼히 챙겼다. 때로 연기의 기회도 생겼다. 그러다가 김희갑씨가 6개월간 ‘꽃 피는 팔도강산’의 해외 로케를 떠나게 됐다. 임씨를 데려갈 수 없었던 김씨는 구봉서씨에게 돌봐줄 것을 요청했다. 김씨가 영화판을 호령했다면 구씨는 방송계를 좌지우지했다. 구봉서쇼에서 사회도 보고, 연기도 하면서 착실히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TBC 방송국이 생긴 것이다.

“당시 TBC가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코미디언들을 스카우트하려고 했을 때였죠. 하지만 구봉서씨는 ‘난 여기서 컸다’고 거절했어요. 배삼룡씨는 구봉서씨와 콤비였거든. 그 양반은 먼저 웃기질 못해, 짝이 있어야지. 그러니 못 갔죠. 이기동씨도 거절했고. 그때 구봉서씨가 제게 가보라고 했어요. 부모도 때 되면 자식을 내보내는데 이번이 좋은 계기라면서. 그래서 서영춘씨하고 옮겼어요.” 주로 마당쇠 역으로 어수룩한 웃음을 보여주던 어느 날, 서영춘씨와 ‘검객 시라노’란 코너를 하게 됐다. 코를 길게 만들어 붙인 서씨의 모습을 보고 연기 도중 즉흥적으로 “어이구야~희한하네” 한마디 했는데, 그게 공개방송에서 ‘빵’ 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담당PD가 달려오더니, ‘너 이 말 앞으로 계속 써먹어’ 하는 거야. 그래서 즐거울 때도 ‘어이구야’, 슬플 때도 ‘어이구야’, 황당할 때도 ‘어이구야’ 했지. 그게 다 먹히더라고.”
하지만 호사다마라했던가. 1980년 신군부의 ‘사회정화’ 바람은 코미디계에도 불어닥쳤다. ‘개다리 춤’을 추던 배삼룡, 눈을 가운데로 모으고 “가갈갈갈” 하던 서영춘, “쿵다라닥닥 삐약삐약”을 외치던 이기동, 그리고 “어이구야”의 임희춘은 1년간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다. 당시 정부는 세계장애인의 해를 앞두고 장애인을 희화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아들이 임씨의 “어이구야”를 흉내내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실세 장관이 펄펄 뛰며 ‘바보 코미디’를 다 없애버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 다들 힘들었죠. 배삼룡씨는 식음료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배신당하고 급기야 미국으로 가야 했죠. 나중에 극장식 술집을 한 서영춘씨, 후에 그 술집을 인수한 이기동씨는 술로 인해 결국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평소 술과 여자, 노름을 멀리한 덕분이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구(구봉서)라인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돈이 좀 모이면 부동산에 투자한 덕분에 그는 여유 있게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바로 노인들을 위한 삶이다.
“제가 92년에 방송국을 제 발로 나왔어요. 어느 순간 내가 연습실에 가면 후배들이 커피만 뽑아주고 우르르 나가는 거야. PD도 겸연쩍어하고. 커피잔만 십여 개 쌓여있는 적막한 연습실에 앉아 ‘이건 선배로서 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그런데 나와보니 막상 갈 데가 없어. 어느 날 파고다 공원에 가봤어요.

하루 종일 ‘해바라기’만 하는 노인들. 아, 이분들이 나를 그렇게 좋아해주던 분들인데 이제 내가 도움을 드려야겠구나,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이런 분들 앞에서 공연이라도 하면 어떨까 싶었죠.”자비로 외국 노인시설을 돌아보고 복지시스템도 연구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손명순 여사를 만났고 이수성 총리의 지원을 받아 95년 사단법인 대한노인복지후원회를 만들었다. 10월 2일이 노인의 날로 제정된 것도 그의 힘이 컸다. 그가 매년 하고 있는 ‘전국 웃음경연대회’ 같은 행사에는 엄용수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 가수 현미·태진아, 탤런트 전원주를 비롯해 방일수 등 동료 코미디언과 그 부인들 모임인 ‘코주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코미디언은 고된 직업입니다. 가수는 한 곡만 히트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지만 코미디언은 매주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잖아요. 게다가 저작권이 없기 때문에 내가 했던 얘기를 누가 해도 어쩔 수 없고 그걸 내가 다시 하면 오히려 베끼는 꼴이 돼버리죠. 행사를 나가도 가수는 잠깐 동안 노래 두서너 곡 하면 되지만 코미디언은 주로 사회를 보기 때문에 두세 시간을 꼬박 진행해야 합니다. 중간중간 웃겨야 하고, 쉴 수도 없고, 제일 불쌍하죠.”

그는 이렇게 보약 같은 웃음을 주는 직업인을 무시하고 비웃을 때 화가 난다고 열을 올렸다. “연기를 통해 웃길 뿐인데 실제 사람 자체를 우습게 보는 일이 많죠. 초면인데도 ‘웃겨봐’ 하질 않나, 진지하게 얘기해도 가볍게 보고 농담으로 받아들이질 않나….”그래서 지난 7월 백남봉씨가 타계했을 때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조문을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코미디언 상가에서 장관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코미디언을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요. 정말 고마웠죠. 대중예술인에 대한 인식도 이렇게 바뀌어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번에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이 신설되고 훈장 등급이 높아진 것도 정부의 인식 전환이 큰 몫을 했다. 대중예술인의 영향력에 비해 사회적 인식이나 대우가 부족했고 직업인으로서 사회적 보호망도 취약하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현재 5만7000여 명의 대중예술인 중 70%가 연간 소득이 1000만원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청와대부터 나섰다. 대중예술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 함영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의 설명이다. 불우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란 샤쓰의 사나이’의 가수 한명숙씨를 위한 헌정음악회(10월 20일 KBS홀)를 지원하고, 지난 8월 앙드레 김 빈소에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직접 조문한 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미디언을 옛날에는 일본식으로 삼마이(원래 삼마이메·三枚目, さんまいめ· ‘가부키’에서 우스개 역할을 하는 희극배우 이름이 적힌 세 번째 종이에서 유래)라 불렀죠. 그런데 요즘엔 이 말이 ‘저질’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보약인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들이 결코 그런 의미에서 ‘삼마이’가 아니거든요. 항상 웃음과 즐거움을 주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차제에 코미디 전용 극장 같은 것도 생겨나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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