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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미소로 환생한 소의 죽음, 그 미소의 주인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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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08면

1 ‘소가죽 부처얼굴 No.7’ (2010), 소가죽,298x200x39cm 2 ‘산으로 돌아온 자유호랑이 No.50’(2010), 리넨에 재,250x400cm3 ‘갑작스러운 깨달음 No.1’ (2010), 재, 철, 그리고 원목, 60.5x77.5x100cm

‘깡촌’의 소년은 가난했다. 저잣거리의 하얀 찐빵도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소년에게 삶이란 헐벗고 배고파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그 무엇이었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를 마친 청년은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풀더미를 입안 가득 물고 있기도 하고(‘꽃들’), 온 몸에 꿀을 바른 채 파리들의 공격을 받아내는가(‘12평방미터’) 하면, 자신의 벌거벗은 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허공에 매달려 있기(‘65킬로그램’)도 했다. 1990년대 베이징의 엄격한 공기와 정부의 강력한 통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행해진 일련의 ‘마조히즘적’인 행위 예술과 이를 찍은 사진들은 서구의 미술 전문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yBa를 키워낸 영국의 사치갤러리를 비롯해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앞다투어 그를 찾았다.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계를 이끄는 작가 장후안(張 洹·45·작은 사진) 얘기다.

중국 아방가르드 대표작가 장후안 한국 첫 전시회, 학고재갤러리서 10일~12월 31일

그가 한국에서의 첫 작품전을 위해 내한했다. 10일부터 12월 31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장후안 개인전-Out of the Ashes’다. 10일 만난 그는 빡빡 깎은 머리를 챙모자 속에 감춘 허름한 회색 작업복 차림, 하지만 눈빛은 형형했다. 어린 시절을 묻는 질문에 그는 “허난성 안양의 가장 낙후된 곳에서 태어나 소를 기르고 돼지를 치며 자연과 교감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권력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많았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90년대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일련의 누드 퍼포먼스에 대해 그는 “워낙 어릴 적부터 벗고 자랐기 때문에 나체를 작품으로 옮기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4 ‘헤헤-시에시에’ (2010), 거울로 마무리된 스테인리스강, 100x70x63.3cm

그의 작품 활동 시기는 크게 셋으로 구분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베이징 외곽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던 92년부터 98년까지, 뉴욕으로 건너가 가죽·철 등의 재료를 이용해 전업 작가의 삶을 시작한 98년부터 2005년까지, 그리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큰 스튜디오를 열고 100여 명의 장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지금까지. 이전의 퍼포먼스에 대해 그는 “정치적 문제는 많이 해결됐고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지금의 내 작업은 9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작업-. 이번 전시에서 그가 보여주는 ‘완전히 다른 화두’는 재(灰)다. 그것도 향을 태운 잿가루다.

“2005년 상하이로 돌아와 지내다 문득 절에서 향을 피우며 빌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향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었어요. 수많은 사람의 축원이고 희망이었죠. 절에 가서 기도하면서 나쁜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그 온전한 소망이 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온몸이 떨릴 정도로 흥분이 됐습니다.”

그는 20개에 가까운 절에서 엄청난 분량의 재를 스튜디오로 가져온다. 동전이나 도자기 파편, 불상 조각 등을 골라내고 한두 달 동안 다시 태운다. 완전히 탄 것은 하얗게 된다. 그렇게 명도에 따라 회색부터 검정까지 구분한다. 이 무채색의 가루로 그림을 그리고 조각상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로 그린 ‘산으로 돌아온 자유호랑이’와 재로 만든 조각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볼 수 있다. 호랑이들은 현대 사회의 억압의 사슬을 끊고 대자연의 품으로 안기기 위해 달음질치는 역동성을 고스란히 전한다. 작가는 잿더미로 만든 조각 ‘갑작스러운 깨달음’ 앞에 서더니 얼굴의 관자놀이 부분에 향을 꺼내 불을 붙인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조각상의 얼굴이 한층 심각해져 보인다.

‘소가죽으로 만든 부처얼굴’ 역시 묘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후안에게 소는 어린 시절의 친구이자 익숙한 오브제다. 털이 촘촘히 남아있는 가죽을 누르고 펴서 부처의 얼굴로 만들었다. 소의 죽음이 부처의 미소로 환생한 것이다. 그 미소는 부처의 것인가 소의 것인가.
신성한 이미지를 대문에 조각해 사람을 반기는 중국의 전통에서 모티브를 따온 ‘기억의 문’ 시리즈는 중국인의 삶에 대한 오마주다. 옛 집들에서 오래된 문을 모아 그 위에 옛날 잡지에 실린 중국인의 일상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트해 붙였다. 다음으로 프린트의 일부를 나무 위에 새긴다. 사진의 이미지와 나무의 질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같은 일을 직접 하는 것은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이다. 작가는 이런 작품을 머릿속에서 만든다. “예술가가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저는 작품의 개념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장인들에게 전하지요. 그리고 제가 만족할 때까지 장인들은 작품을 만듭니다. 중간과정에서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것은 장인들의 몫입니다.”그는 재나 소가죽 등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컨템퍼러리 아트의 숙명”이라 말했다. 고인이 해놓은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모방밖에 안 되며 그것은 쓰레기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작품 속에 중국의 전통을 담아내고 있다. 8년간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가장 중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이후부터다. 그런 작가를 중국 정부는 2010 상하이 엑스포 국가대표 작가로 명명했다. 엑스포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두 마리의 스테인리스스틸 판다 조각 ‘헤헤’와 ‘시에시에’는 작가가 “중국인의 희망과 지혜, 강인함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그는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했다. 환경문제와 도시화·세계화 같은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다들 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도시를 만들어 살아온 이래 오늘날의 도시생활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그는 요즘 들어 삶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옛날에는 내가 배부르면 다른 사람을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인간 자체의 본성을 돌아보려 애쓴다. 예술에도 그런 것을 반영하지 않으면 오늘을 사는 의미가 없다.”
말을 마친 그가 잿더미 조각에 다시 향을 꽂고 불을 붙였다. 언뜻 조각상이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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