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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이루마, 쉽고 편한 음악만 하냐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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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사진=스톰프뮤직 제공]

얼굴엔 흠결 하나 없다. 말투는 달콤하고 느리다. 태도는 착하고 반듯하다. 만드는 음악도 그렇다. 평화롭고 나긋하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이루마(32)다. 그 안엔 고집이 있다. 이루마의 단순하고 간단한 음악은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 내지 못한다. 광고와 영화의 배경음악을 주로 만들지만 미국ㆍ유럽의 최신 현대음악 흐름에 크게 뒤처지지 않을 음악도 내놨다. 클래식 앙상블을 위해 만든 피아노 4중주곡은 ‘이루마 맞나’ 싶을 정도로 무겁고 비장하다.

데뷔 앨범을 내고, 드라마 ‘겨울연가’로 히트 작곡가가 된 지 9년이다. 그동안 그는 “상업적 음악에도 예술성이 있다”는 명제를 주장했다.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추억을 떠올릴 시간을 만들어 주는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작곡가로서 음악적 발전을 위해 많은 방식을 시도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루마에서 어긋난 실험들은 상업적으로 히트하진 못했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에 남았다. 그 흔적을 따라가 보면 ‘배경음악 작곡가’ 이상의 음악인을 만나게 된다. ‘감수성’의 대명사로 취급되는 그의 음악이 사실은 ‘고민’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게 된다. 피아노의 맑은 음색과 투명한 감성은 이루마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다.

글=김호정 기자 , 사진=스톰프뮤직 제공

이루마는 아마추어들의 단골이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이 연주한 곡이 이루마 2집에 실렸던 ‘너의 마음속엔 강이 흐른다(River flows in you)’였다. 단순한 곡이다. 구조도 간단하다. 음표들의 움직임이 크지 않아 쉽게 연주할 수 있다. 악보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이 음악 때문에 마음 움직인 시청자가 많았다.

지상파에서 흘러나오기 전에도 이 작품을 연주한 사람은 꽤 있었다. 외국인들도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놨다. 이루마는 “이 곡을 듣고 공동 작업을 제안한 노르웨이 가수도 있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이처럼 이루마의 음악은 아마추어들이 즐겨 연주할 정도로 지극히 단순한 음악이다. 그런데 울림이 크다. 드라마 ‘겨울연가’ 등에서 함께 작업한 작곡가 이지수씨는 “듣기엔 음악이 아주 심플하지만, 똑같이 써보라고 하면 그 어느 작곡가도 그렇게 쓸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이루마의 특징이 나온다.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낸다. 적은 음표와 크지 않은 음량을 경제적으로 투자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커다란 결과를 얻는다. 이처럼 성공한 아티스트 대열에 끼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붙은 딱지를 끊임없이 떼어내고 있다.

광고·드라마·영화음악을 넘어서

음악처럼 사람도 착하다. 작품은 억지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루마도 그렇다. 하지만 작곡가에게 부드러움은 때로 독이 된다. 그를 센티멘털한 분위기로만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중문화에서의 ‘물량 공세’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 ‘Kiss the rain’ ‘May Be’ ‘When The Love Falls’ 중 한 곡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란 힘들 듯하다.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아는 음악들이다. 많은 광고ㆍ드라마ㆍ영화가 이처럼 이루마의 감성에 힘입어 제작되고 있다.

이 이유 때문에 이루마를 상업적인 아티스트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앨범 ‘H.I.S. Monologue’(2006년 발매)를 권한다. 이 음반엔 서양 고전음악의 현대적 경향인 ‘미니멀리즘(단순한 주제를 반복하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 다수 실려있다. 현대음악사의 수퍼스타인 존 케이지의 ‘프리페어드 기법(피아노 현에 이물질을 끼워 넣어 소리가 변형되는 우연성을 보여주는 것)’도 썼다. 불분명하고 몽환적인 화음이 무리 지어 흘러간다. 골수 팬이 아니고서야 익숙한 음악이 없을 앨범이다. 이루마는 이렇게 잠시 대중과 작별한다.

상상력 넘치는 음악인 키우고 싶다

이루마의 생명력은 자신의 장점과 이별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11세부터 영국에서 살았던 그는 영국 국적을 포기하고 2006년 해군에 입대했다. ‘겨울연가’ 대신 ‘어머나’와 ‘쏘 핫’을 연주해야 했던 2년2개월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사람들의 ‘날것’을 만났다.

“그동안은 손쉽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어요. 간단하고 단순한 방법으로요.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저의 문제였던 걸 알게 됐죠.”(2008년 12월 중앙일보 인터뷰) 그는 좀 더 힘 있고 남성적인 음악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히트곡 대부분은 데뷔 초창기에 몰려있다. 선이 굵고 멜로디가 불분명해진 음악을 사람들은 낯설어한다. 하지만 이루마는 자신의 색깔대로 묵묵히 음악을 계속할 태세다. “지금까지 ‘뉴에이지’로 분류됐는데, 클래식과 재즈의 중간이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이 낡은 분류법 대신 나의 음악은 ‘포엠뮤직’으로 불렸으면 한다.”(2009년 11월 미니 콘서트) ‘시와 음악의 결합’쯤으로 이해되는 장르 용어를 만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루마는 2003년 12월 시작해 매년 말 열 개 이상의 도시에서 독주회를 연다. 그만큼 팬이 두텁다는 뜻이다. ‘연예인’에 가까운 아티스트지만 자세만큼은 ‘학생’에 가깝다. 이루마는 2009년 1월부터 KBS클래식FM(93.1Mhz)의 ‘세상의 모든 음악’ 디제이를 맡고 있다. “오랜 해외 생활로 우리말 실력이 부족하다”며 대본을 여유 있게 받아 스튜디오에 미리 도착한다. 이루마처럼 매일 하는 방송을 몇 번이고 사전 연습하는 진행자는 찾아보기 힘들기에 성실한 음악인으로 입소문도 났다. 이 성실함으로 MBC ‘수요예술무대’ 진행도 맡았다. 데뷔 후 9년 동안 13장의 음반을 낸 것 또한 성실성의 지표 중 하나다.

이루마의 꿈은 좋은 음악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다녔던 영국의 ‘퍼셀 스쿨’에 대한 감사함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재능보다는 잠재력을 보고 학생을 뽑아 창의력을 최대한 존중하는 학교였다. 음악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도록 놔둔다. 개인의 목표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교사는 지시하는 게 아니라 돕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에도 이런 학교를 만들어 상상력 넘치는 음악인을 길러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받은 교육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음악 후배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이루마의 미래는 히트곡을 만드는 작곡가, 피아노 잘 치는 피아니스트 너머에 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스톰프뮤직 제공

이루마는

1978년  서울생

1988년  영국 유학

1997년  퍼셀 스쿨 졸업

2000년  킹스 칼리지 작곡과 졸업

2000년  한ㆍ영 문화교류 공연인 연극‘태’음악 담당

2001년  1집 ‘러브 신(Love Scene)’ 발매

2001년  드라마 ‘겨울연가’에 음악 삽입

2003년  전국 13개 도시 순회공연

2004년  도쿄 데뷔 공연

2008년  정규 6집 ‘P.N.O.N.I’ 발매

2009년  1월~ KBS클래식FM ‘세상의 모든 음악’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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