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G20이 머리 맞대고 환율·재정적자 둘러싼 갈등 조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이제 며칠 뒤면 서울 G20 정상회의다. 10월 22~23일 열렸던 경주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이전만 해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글로벌 불균형을 둘러싸고 ‘환율전쟁’이 벌어졌고, G20 정상회의가 글로벌 경제를 위한 합의가 아닌 각국의 입장을 내건 말다툼의 장(場)이 될 우려가 컸다. 환율전쟁 탓에 좋게 말하면 G20이 ‘알맹이 없는 말 잔치(toothless talk shop)’가 되거나, 심하게 말하면 G20 체제 자체가 와해될 상황이었다. 재무장관들이 서로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지난 한 달여 동안 글로벌 경제를 불안하게 했던 환율과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등에 관해 정상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경주회의가 보여주었듯이 ‘주요국 간의 경제마찰은 결국 공멸’이라는 데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이에 바탕한 공조정신은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도 발휘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균형성장을 위해 행동으로 적극 나서겠다는 ‘서울 결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회의 주요 의제를 부문별로 살펴본다.

① 성장을 위한 정책의 틀

다른 의제 성패, G20 존립까지 달려

글로벌 경제를 위기 없는 성장의 길로 인도해 ‘강하고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이루자는 게 성장의제다. 이 의제에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 글로벌 금융안전망 등 여타 의제의 성패뿐 아니라 G20의 존립까지 달려 있다. 바로 ‘균형’ 때문이다.

 ‘강하고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이라는 표현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강한 성장을 지향하는 이유는 아직도 미약한 글로벌 경제의 활력 때문이다. 위기가 극복되었다고 하고 또 중국 등 일부 신흥국의 성장세 회복이 경기안정책을 써야 할 정도로 강하긴 하다. 그러나 선진국, 특히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경기회복세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강하다’는 의미는 ‘그 회복세의 불씨를 살려나가자, 따라서 너무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구사하지 말자’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재정적자 문제 해소가 핵심이다. 성장세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재정건전화 노력을 기울여 재정적자가 주요국의 장기적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공조할 필요가 있다.

 ‘균형 성장’은 글로벌 불균형을 타깃으로 했다. 금융위기의 한 축으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경제 간의 무역불균형이 해소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올 6월 캐나다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합의하고 서울회의에서 정책추진 상황을 점검키로 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미국 등 무역적자 선진국은 시장개방을 유지한 가운데 수출 경쟁력 강화와 저축 증대(소비억제)에 노력하고 ▶일본 등 무역흑자 선진국은 내수촉진을 위한 구조개혁에 정책기조를 두며 ▶중국 등 무역흑자 신흥국은 환율유연성 제고와 더불어 사회간접자본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내수확대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선진국들은 성장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반감시키고 2016년까지 정부채무비율을 더 이상 늘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문제는 각국의 상이한 국내경제 상황 때문에 성장 의제에 의한 정책공조의 틀을 지키기 힘들다는 점이다.

 중국의 환율을 둘러싼 마찰의 시발점은 미국의 성장세 회복지연 속에서 커져가는 대 중국 무역적자다. 위기 직후부터 펼친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민간경제의 회복세로 이어지지 않아 자칫 디플레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되자 ‘수출확대’를 선언한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위안화를 저평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 삼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도 문제다. 디플레를 우려할 정도로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선택한 정책은 통화팽창과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이다. 그리고 미국의 두 번째 양적 완화는 달러가치 하락을 예상하는 국제자금이 신흥국으로 몰려가게 해 신흥국들이 환율절상과 통화팽창의 부담을 지게 했다.

 유럽도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다. 유럽 전체로는 대략 무역균형을 이루고는 있다. 하지만 독일 등 명확한 무역흑자국은 내수확대를 꾀하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체가 재정긴축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일본은 심각한 재정적자와 과도한 무역흑자로 고민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다시 디플레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재정건전화는 외면하고 통화팽창과 경기부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중국은 무역흑자 신흥국이다. 그래서 환율유연성 제고와 내수확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선택은 환율 정상화엔 인색하고 수출확대 기조를 포기하지 않고 있 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조율해내느냐가 관건이다.

②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

금융위기 재발 방지, 안정 성장 추구

‘글로벌 금융규제개혁’ 의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가 안정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각국과 함께 글로벌 금융체제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그간에 표명된 주요국의 입장을 감안하거나 정상회의에 제출될 바젤 은행감독위원회(BCBS)의 규제개혁안의 척도를 볼 때 정상들의 합의가 무난히 예상된다. G20 정상들은 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개혁의 큰 방향뿐 아니라 개혁의 구체적 내용과 그 추진 시한까지 합의할 것이다.

 바젤위원회의 합의 중에 금융회사의 경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건전성과 유동성 규제 강화다. 자본건전성을 강화하자는 합의는, 부실이 급증할 때 개별 금융회사들이 이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재원(자기자본)을 미리 마련해 개별 금융회사의 부실이나 파산이 여타 금융회사로 번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자본건전성과 유동성 비율을 높이는 것은 당장은 자본조달 비용의 상승, 결과적으로 수익성 저하를 의미한다. 그래서 국제금융연구소(IFI) 등은 그 금융비용 상승과 그에 따른 경제위축 효과가 예상외로 클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러나 단기적 충격과 비용보다 금융시장 안정화와 그에 따른 경제안정 기반 강화라는 장기적 혜택이 충분히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 바젤위원회도 그 단기적 충격을 감안해 제시한 각종의 규제강화조치를 2015~2019년 각국이 국내 사정을 감안해 실시하도록 했다.

‘규제의 재정(裁定)’(regulation arbitrage·규제가 엄격한 나라에서 규제가 느슨한 나라로 금융업이 옮겨가는 것)이 야기되지 않도록 규제 개혁 추진에 각국이 적절한 보조를 맞춘다는 묵계가 조성돼 있다.

③ 글로벌 금융안전망

지역- 국제기구 위기 대응 능력 연계

한국이 주도해 온 의제가 바로 글로벌 금융안전망이다. 각국과 지역 그리고 국제금융기구의 위기대응 능력을 상호 연계해 글로벌 금융안정 체제를 갖추자는 것이다.

 한국이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주요 의제로 적극 밀고 있는 건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한국과 동아시아나 중남미 신흥국이 그 불안 때문에 외환보유액을 쌓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역불균형 문제가 생기고 있으니,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만들어 두면 그렇게 많은 외환을 쌓을 필요도 없고 무역불균형이 해소될 여건도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간 통화 스와프의 동아시아 네트워크인 ‘치앙마이체제(CMI·Chiang Mai Initiative)’가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효험이 있었다는 점도, 한국이 지역협력체의 네트워크로 조직되는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관련해 관건은 IMF의 입장이다. 과거 일본 등이 아시아에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창설해 위기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자고 했을 때 자기 영향력의 저하 때문에 반대했던 IMF가 지금은 CMI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IMF 스스로 위기 대응 재원(2500억~5000억 달러)을 늘리고 신축적 신용채널(FCL)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여타 어느 의제보다 순조로운 합의가 예상된다.

 그래서 서울회의에서 정상들은 비교적 큰 논란 없이 첫째, 신흥국에도 CMI 같은 지역별 금융안정협력체제를 구축하고 둘째, 지역협력체와 국제금융기구 간에 원활하고 긴밀한 글로벌 금융안정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셋째, 국제금융기구의 재정 기반을 확충하면서 동시에 위기 예방을 위한 국제기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에 의견을 모으게 될 것이다.

④ 개발

저개발국 지원, G20 대표성 높여

한국이 주도하는 또 다른 의제가 개발이다. G20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많은 저개발국의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그들의비판적 시각을 잠재우고 글로벌 협의체로서 G20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래서 G20 토론토 회의에서 정상들은 “개발 격차를 줄이고 빈곤을 감축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달성하고, 모두를 위해 강하고 복원력 있는 세계경제를 확보하고자 하는 우리의 원대한 목표 달성에 필수적이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개발실무그룹이 다년간 행동계획을 마련, 서울회의에서 채택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이에 관해 몇 가지 비판적 시각이 있다. ‘개발의제가 너무 과하게 성장 일변도로 짜여 있다’ ‘환경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진척이 부진한 UN의 새천년개발목표(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달성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그러나 개발 의제에 관한 각국, 특히 신흥국의 활발한 참여를 감안할 때, 글로벌 경제 성장으로 귀결되는 구체적 개발의제에 관한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회의에선 ▶개발 관련 국제기구의 재원을 확충하고 ▶개발 인프라 구축, 개발경험 공유, 무역증진, 민간투자와 일자리 창출, 금융기회 확대 등 ‘8대(pillar) 개발항목’에 관한 구체적 추진계획을 채택하면서 ▶MDG와 연계를 강화하는 등 세계은행, 유엔개발계획(UNDP) 등의 국제 개발 노력과 공조에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글로벌 균형 성장 위한 행동 강령 ‘서울 결의’ 나와야 #김정수 경제 전문기자가 본 G20 핵심 의제 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