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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가능한 변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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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감독 : 민병국

주연 : 정찬.김유석

장르 : 드라마

등급 : 18세

홈페이지 : www.possiblechanges.com

20자평 : 현실과 욕망, 겉과 속, 배려와 집착, 그 이분법의 충돌.

푸른 하늘을 뒤덮은 흰 구름으로 시작과 끝을 수놓는 '가능한 변화들'은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살펴본 우울한 드라마다. 누추한 오늘을 화려한 내일로 바꾸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평범한 욕망을 풍자한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 저 멀리 손짓하는 꿈에 도달할 수 없는, 아니 도달할 수 없음을 알아챈 사람들은 애써 눈앞의 현실을 부정한다. 나아가 현실을 비틀고 왜곡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파괴하고, 상대를 구속한다. 위선.시기.질투.집착 등은 모두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변화들'이 방점을 찍는 곳도 바로 여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몸부림칠수록 더욱 자신을 옥죄 오는 현실-그것이 능력 탓이든, 환경 탓이든-에서 연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 같다.

분위기는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유사하다. 대학교수.작가.연구원 등 이른바 '배운 사람'의 겉과 속을 샅샅이 뒤집는다. 일상에 대한 냉정한 관찰, 무기력한 상황, 위선적인 캐릭터 모두 닮았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역시 '가능한 변화들'을 찾아 스크린에 입문한 민병국 감독이 바라보는 오늘은 그렇게, 그렇게 잿빛으로 점철된다.

'가능한 변화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업작가를 꿈꾸며 회사를 그만둔 문호(정찬)가 전반부를, 몸이 불편해 첫사랑에 실패한 기업체 연구원 종규(김유석)가 후반부를 끌고 간다. 유부남인 문호는 채팅에서 만난 여자에게 총각 행세를 하며 지저분한 여관에서 몸을 섞고, 주머니가 썰렁한 종규는 10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을 얻으려고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간다. 둘도 없는 친구인 문호와 종규의 충격적 결말은 영화를 마무리하는 장치. 그들과 주변 인물이 빚어내는 한 편의 '위선극'이 우리를 헛헛하게 한다.

'가능한 변화들'에는 '가능'도 '변화'도 없다. 불안한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일탈의 섹스'만 출렁이다. 왜곡된 탐닉 뒤에 남는 건 텅 빈 마음과 피곤한 육체…. 지난해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상을 받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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