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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본 ‘서울 G20’ ⑧ 다 함께 성장하는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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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는 다양한 비정부기구(NGO)가 현지에서 조직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쳤습니다. G8 정상의 얼굴 가면을 쓰고 임신부의 몸을 형상화한 옷을 입고 벌였던 재미있는 퍼포먼스 사진은 국내 언론을 비롯한 전 세계로 타전됐지요. 아동 사망률을 줄이겠다는 G8 리더들의 약속을 빨리 이행하라는 촉구였습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서 한물간 록 가수로 나왔던 영국 영화배우이자 빈민구호단체인 옥스팜의 글로벌 홍보대사인 빌 나이도 토론토에 나타나 빈국을 돕자고 목청을 높였지요. 서울 정상회의에선 저개발국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개발 의제가 논의됩니다. 역시 한국이 주도하고 있지요. 이 내용을 G20 홍보대사인 배우 한효주가 질문하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가 설명하는 형식을 빌려 쉽게 풀어봤습니다. 이번 마지막 회는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경영학 박사)이 답변합니다.

효주 : 주요 20개국(G20)이 모여 저개발 국가의 개발을 논의한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아요. 회의 당사자들이 아닌 나라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배경이 뭔가요.

박사 : 말씀하신 대로 G20 회원국은 20개 나라예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유엔 회원국이 192개니까 170개가 넘는 나라는 논의에 참여할 수가 없어요. 비회원국들한테는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의제가 개발이에요. G20 비회원국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개발입니다. 즉 G20의 신뢰성과 효율성,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의제예요.

 또 4차 정상회의 때까지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주로 논의했잖아요. 위기 이후에도 G20을 이어가려면 실효성 있는 논의가 필요하고, 개발 의제가 적절합니다. 저개발국가의 발전을 도와 세계적인 수요를 창출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개발도상국의 성장이 세계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라는 겁니다. 이런 이유에서 개발 의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G20이 다루어야 할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주 : 우리가 개발 의제를 주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여기에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김필규 박사

 박사 : 한국은 빈곤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나라예요. ‘한강의 기적’이란 얘긴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의 경험, 즉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해줄 수 있게 된 성장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눠 다 같이 잘 사는 지구촌을 만들자는 겁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IMF 사태’라고 불리는 국가 부도 사태를 겪었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통해 금융과 기업 부문의 적극적인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도 있어요. 발전을 위한 ‘개발’은 한국의 전문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효주 : 아, 그렇군요. TV나 신문을 통해 배를 곯고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저렸는데 그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걸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박사 : 그렇죠. 그런데 또 원조라는 개념과 개발은 차이가 있어요. 원조는 돈이나 물건을 주자는 얘기지만, 개발은 이를 통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자는 것이지요. 밥을 주는 게 아니라 벼 농사를 짓게 만들자,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효주 :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걸까요?

 박사 : 저개발 국가 국민이나 기업이 금융 서비스 접근을 쉽게 하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어요. 쉽게 말해 종잣돈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쉽게 해 주자는 겁니다. 사업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해요.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그것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대출을 해줄 필요가 있지요. 아프리카나 남미, 중동지역의 빈곤층은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내일을 위해 저금할 수 있는 방법도 찾기 힘든 게 현실이에요. 적잖은 규모의 사업자금이 필요한 기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기업이 자리 잡을 수 없으니 일자리도 적을 수밖에 없고, 돈벌이를 못하니 배를 곯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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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주 : 돈을 빌려 쓰고 저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립하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박사 : 그렇습니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 시스템을 저개발 국가가 정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겁니다. G20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빈곤층과 중소기업 금융서비스 활성화 전문그룹(FIEG·financial inclusion expert group)을 만들었어요. 다양한 실행 방안을 검토해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에요.

 효주 : 그런데 국민 개개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 시스템은 서로 다를 것 같아요. 빌려 쓰는 돈의 규모나 이를 되갚는 방식 등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박사 : 잘 보셨어요. 그래서 G20에서도 서로 다른 그룹을 두고 있어요. 빈곤층을 위한 금융혁신 전문가 그룹(Access through innovation sub-group)과 중소기업 금융 활성화 전문가 그룹(Small and medium size enterprise finance sub-group)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먼저, 금융혁신 전문가그룹은 빈곤층의 금융서비스 활용 현황과 사례를 분석해 모델을 만들고 있어요. 저개발 국가들은 경제적·규제적·지역적 요인과 접근 비용으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데요, 일부 국가에서는 은행지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공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케냐에서는 ‘엠-페사(M-Pesa)’라는 모바일머니를 도입해 빈곤층의 금융서비스를 확대하는 효과를 얻고 있어요. 필리핀에서도 스마트머니를 도입해 금융 접근성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힘입은 것들이죠.

 그리고 마이크로크레디트라고 들어보셨죠? 방글라데시의 그라민뱅크는 농촌 빈민과 저소득층에 대한 생활자금과 사업자금을 지원해 저소득층의 금융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이와 같은 모범사례를 참조해 구체적인 실행체제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중소기업 금융 활성화 그룹도 각국의 중소기업 금융 성공사례를 분석해 실행계획을 보고할 예정이에요. 특히 성공사례 발굴을 위해 중소기업 금융 활성화에 대한 제안을 공모해 우수 제안을 시상하는 경진대회를 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수집한 우수 사례를 발굴해 공포할 계획입니다.

 효주 :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미소금융 같은 것들 말이에요.

 박사 : 네, 맞습니다. 서민 금융 활성화를 위해 운영 중인 미소금융이 있죠. 지난해 12월부터 기업과 금융회사가 출연한 기부금과 휴면예금 등을 재원으로 미소금융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소득·저신용 계층을 위해 대출해주는 제도죠. 최대 5000만원까지 빌려주고 금리도 연 2.0~4.5%로 싼 편이에요.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지역보증재단을 통한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을 확대해 왔어요. 이밖에 정책금융공사와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한 중소기업의 다양한 금융지원을 하고 있고요. 모태펀드라는 것도 있는데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초기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정책입니다. 이런 제도들이 저개발국의 중소기업 금융을 활성화하는 데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효주 : 금융 접근성 외에 또 어떤 것들이 개발 의제에 담기나요.

 박사 : 먹을거리로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식량 안보,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 개발, 민간 주도 성장과 개발 인프라 지원 등이 다뤄질 겁니다. 지난해 있었던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논의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은행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협력체제가 빈곤 감축과 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도록 했고요. 지난 6월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중간 보고서가 제출됐습니다.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인프라와 인적자원 개발, 무역, 지식 공유 등을 중심으로 G20이 저소득 국가의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 겁니다.



“돈보다 시스템 지원이 우선 … 우리 개발 경험 전수할 것”

권해룡 무역국제협력국장

“개발 의제는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중에 한국이 가장 비교 우위에 있는 분야다.”

 G20 준비위 권해룡 무역국제협력국장(사진) 얘기다. 권 국장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개발 의제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196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해 단기간에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성장했다”며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산업화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게 100년이 넘었다. 이들에게 개발 경험은 과거의 ‘역사’인 셈이다. 반면 한국의 현재 기성 세대들의 몸과 마음엔 개발의 경험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개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권 국장은 “한국이 얘기하면 저개발국가들은 집중해 귀를 기울인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개발을 다뤄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4차 정상회의까지는 위기 대응이 급했다. 거시정책 공조와 금융규제,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개혁이 시급한 과제였다. 급한 불을 끄고 나면 G20은 새로운 관리모드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발이 향후 논의할 주요 의제로 적합하다는 거다.

 권 국장은 “전 세계가 균형 잡힌 성장을 하기 위해서도 저개발국가의 개발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저개발국가가 G20의 도움을 받아 발전하게 되면 세계경제의 수요가 늘어 새로운 성장의 축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개발 의제는 각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이 비교적 적다. 그러나 나라마다 개발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르다. 인프라와 무역 투자, 고용, 지식, 개발경험 공유 등에 있어 G20 국가들이 제안한 구체적 실행 아이템만 100개가 넘게 접수됐다. 준비위는 유사한 제안을 통합하는 작업을 거쳐 공동선언문 초안에 들어갈 문구를 다듬고 있다.

 개발을 논할 때 각국의 재원 마련 방안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권 국장은 그러나 ‘돈보다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저개발 국가들에 지원되는 직접 원조는 세계적으로 1000억~1500억 달러 수준이다. 반면 민간재원은 이보다 훨씬 많다. 권 국장은 “민간자본이 흘러갈 수 있도록 G20이 정책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보증과 보험, 조세제도 등을 지원해 민간 기업의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개발 의제의 핵심이란 얘기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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