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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는 ‘힘’ 시민사회단체 탐방 시리즈 ① 천안 한빛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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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열린 ‘천안시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천안시 장애인단체 대표 8명이 개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빛회 제공]

시민 혼자서는 지역사회에 살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여러 분야에서 시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바로 시민사회단체다.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노동·인권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집단의 이익이 아닌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찾아 조명한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더불어 사는 사회…“함께여서 좋다”

㈔한빛회가 내년 5월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머물러 있지 않은 ‘생명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23일 열린 ‘한빛회 등반대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산을 오르며 서로의 생생한 경험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조영회 기자]

화창한 가을 하늘. 유난히 빛나는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지난 23일. 주말을 맞아 천안지역 장애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애인들의 가을나들이를 위한 ‘한빛회 등반대회’가 독립기념관 단풍나무길에서 열렸다. 회원들의 정보 교류와 지역사회에 대한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한빛회가 마련했다. 지체·지적장애인, 비장애인 회원, 실무자, 후원자, 자원봉사자 등 130여 명은 등반에 앞서 휠체어 등 장비를 정비하고 주의사항을 경청했다. 어린 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와 실무자들이 각 팀을 나눠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등반이 시작되자 휠체어를 밀며, 목발을 짚어가며 한 발 한 발 오르막 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경사 길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휠체어에 앉은 한 장애인이 못내 미안한지 연신 물을 건네며 천천히 가자는 말을 하자 이를 지켜보던 한 회원이 “이래서 난 힘 있는 젊은이가 좋더라”는 농담에 일대가 웃음바다로 변했다. 이렇게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장애인들이 함께 단풍이 물든 고즈넉한 산의 정취를 한껏 만끽했다. 나이 어린 지적장애인과 부모님을 따라 나선 초등학생들은 가을 산이 좋은 지 모처럼의 나들이 때문인지 산길을 뛰어 오르며 마냥 신이 났다. 오랜만에 만난 회원과 자원봉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일부 회원들은 중간에 마련된 쉼터에 앉아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로 정을 나눴다.

 등반 도중 행사 때마다 차량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자 이병훈 한국통학버스안전협회 충남본부장을 만났다. 이 본부장은 “한빛 가족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기로 약속했다”면서 “어느 날 나들이 행사 때 차량이 없다며 도움을 청해와 맺은 인연이 어느덧 12년이 됐는데 이후 그들과 함께하면 마음이 뿌듯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부심과 감동이 밀려 온다”고 말했다. 처음 등반대회에 참여한 방주영(39·여·지체장애)씨는 “외출하기가 쉽지 않아 매일 집에만 있었는데 나와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면서 “낯을 가리는 편인데 회원과 봉사자들이 편하게 대해주니까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길을 모두가 함께 걷는다는 자체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등반 후에는 주어진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보는 팀별 문장발표회 시간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시간이다. 추위, 겉옷, 너와 나, 마음, 보물이라는 단어를 찾은 한 팀이 “‘추위’가 오기 전에 ‘겉옷’을 벗고 ‘너와 나’의 ‘마음’을 담아 ‘보물’찾기 ‘여행’을 떠나요.”라는 멋진 문장을 만들어 박수를 받았다. 대학생 봉사자 정구웅(20)·김원식(20)씨도 “장애인들이 친근하게 대해주고 특히 그들의 순수한 모습에 느낀 점이 많다”며 “봉사점수로 따질 수 없는 마음에서 얻은 보람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삶의 기본권 회복 위한 노력

한빛장애인평생교육원이 지난 22일 한빛회 강당에서 올해 네 번째 초대강좌를 마련했다. 장애당사자가 강사가 되어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30여 명의 장애인과 시민이 함께한 강좌에서 뇌병변 장애 1급인 신우섭 회원이 ‘나의 장애는 실패가 아니라 행운이다’라는 주제로 2시간에 걸쳐 강의를 진행했다. 언어 전달이 어려워 스크린을 통한 문자전달과 동영상 상영 등으로 자신의 일상생활과 미래의 꿈을 설명했다. 그는 현재의 과정에서 있어 장애는 고통스럽지만 결코 의지를 꺾을 수 없는 불편함에 지나지 않았음을 강조해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처럼 한빛회는 교육·이동·직업을 통해 삶의 기본권을 회복하고 문화·스포츠·정책제안 등으로 자아실현과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울림 캠프, 등반대회, 체육대회, 문학의 밤을 통한 정기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비장애인만의 여가생활로 여겨지던 스포츠에 대한 편견을 깨고, 다양한 스포츠 활동도 하고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회원들이 증가하면서 이동이 기본권으로 보장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권리 찾기를 시작했고 리프트 차량과 자원봉사에 의한 이동지원센터도 갖췄다. 한글·인권·리더교육을 바탕으로 한빛장애인평생교육센터를 설립해 구체적인 교육지원도 하고 있다. 천안시장애인보호작업장과 꽃밭사업단을 통해 근로활동에 대한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장애인 전체에 대한 현장이슈를 중심으로 한 권익옹호 활동으로 이어져 장애인시설 비리대책 활동, 장애인생존권을 위한 활동으로도 확대되어가고 있다. 한빛회는 창립 30주년을 맞는 내년부터 교육과 직업을 특화해 지역사회의 자랑스러운 브랜드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한빛회=세계 장애인의 해를 맞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던 시기인 1981년 5월 11일 탄생했다. 천안지역 장애인 당사자가 모여 스스로의 목소리를 나타내고자 출발했다. 당시에는 지역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 에티켓도 지켜지지 않았던 시기였고 초창기 구성원 대부분이 학생 층이었다. 큰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했지만 풀뿌리 장애인의 자조모임은 시작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자조모임의 시작은 장애인리더 양성, 지역에 기반을 둔 활동, 장애인 당사자성에 충실한 역량강화, 네트워크 형성 등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확보에 다가섰고 현재 장애라는 경험에 귀 기울이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비장애인과 함께 한결 같은 29년을 지키고 있다.



한빛회 박광순 대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는 공동체

1981년 창립한 한빛회가 내년이면 30주년이 된다. 박광순(사진) 대표로부터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고 풀뿌리단체로서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 들어 봤다.

-천안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단체다. 한빛회만의 고유한 색깔은 무엇인가.

 1980년대는 거의 모든 활동이 서울 중심이었다. 하지만 중앙 중심의 활동은 지역상황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때 ‘지역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며 풀뿌리장애운동을 시작한 한빛회는 파격적이었다. 천안이라는 공간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천안에 사는 장애 중·고·대학생이 활동의 중심에 섰다. 비장애인도 함께 참여했다. 이는 장애인의 삶을 개인이 아닌 사회공동체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풀뿌리단체로서의 한빛회는 그 원동력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당사자라는 것, 그리고 장애인을 넘어서 비장애인과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한빛회 뿐만 아니라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오랫동안 현장에 있는 것뿐인데, 함께 동행하는 분들이 좋게 보고 격려해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장애인을 둘러싼 다양한 차별과 억압은 비단 장애인의 문제만이 아닌 약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여러 영역에서 권리를 회복하고 확장하는 활동들은 약자의 이익을 위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논리와 가치를 바꾸어 나가는 활동으로 귀결된다.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다양성의 존중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30년의 역사 속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왔다. 빨리 병원으로 와 달라는 얘기였다.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이 막 깨어났는데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어 죽겠다고 울고불고하며 병원에서 뛰어내리려 하니 어떻게든 남편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장애를 가진 나도 이렇게 살고 있으니 제발 살아달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맘대로 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교통사고를 당한 그분은 윤리를 가리키는 선생님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윤리적이며, 우리 모두 예비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텐데 하는 씁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빛회원 김성규씨(보치아 국가대표)

장애인이 불편하면 모두가 불편하다

김성규(사진)씨는 천안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치아 국가대표 선수다. 천안시 교통약자 이동권 확보를 위한 모임(천·이·모)의 회장도 맡고 있다. 희귀 난치성 질환인 근이영양증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그는 한빛회와는 오랜 친구이자 든든한 동행자다.

-아시안게임 준비를 위해 출국한다는데.

 2009년 12월 보치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최근 보치아 BC4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BC4는 근이영양증이나 경추손상 등으로 인한 장애인의 등급을 뜻한다. 비종목의 설움에도 꾸준히 연습한 덕분이다.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24일 합숙훈련을 떠난다. 우리나라와 천안을 빛내는 사람이 되겠다.

-장애 당사자로서 이동권이나 편의시설 이용에 만족하나.

 턱이 있어서 못 올라가는 공원이 있고 버스 정류장도 턱이 많아 장애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쌍용동의 경우 10곳 가운데 절반 정도가 턱이 있어 이용이 불가능했다. 장애인 콜택시도 겨우 4대가 운영되고 있다. 당일 예약은 꿈도 못 꾼다.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보험일수가 초과돼 아파도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장애로 인해 들어가야 하는 부수적인 비용이 많다. 장애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으니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대폭적인 국가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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