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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교수 3인이 말하는 '글을 잘 쓰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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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 글쓰기 담당 교수들은 글쓰기가 읽기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박정하·김경미·정희모 교수. 임현동 기자

글 없이는 체계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한 대학들은 최근 다투어 작문 과목을 신설하거나 강좌 수를 늘리는 추세다. 글쓰기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정희모(연세대 학부대학)·김경미(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박정하(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가 2일 한 자리에 모였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도움말을 내놓았다.

#글쓰기는 왜 중요한가

정희모=글쓰기 능력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방법은 없다. 연구자료들에 따르면 중간간부가 하는 일의 반 가량은 글쓰기라고 한다.

박정하=요즘 대학은 기업의 요구를 많이 반영한다. 학생들의 사회적응력을 높이려 애쓴다는 뜻이다. 예컨대 정보화 사회에서 팀별 조직 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아닌가. 그건 곧 글쓰기로 이어진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남이 갖지 못한 든든한 무기를 하나 더 갖춘 셈이다.

김경미=인문.사회과학 분야 전공자들은 누구나 평생 글로 먹고 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직업을 갖든 글 잘 쓰는 사람은 경쟁력을 지닌다. 어릴 때부터 10년 정도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많이 읽고 틈틈이 소감을 적어나가면 반드시 큰 보상이 따른다.

정='생명의 다양성'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동료 교수의 글쓰기 강좌를 2학기 동안 들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요즘 신입생의 글쓰기 수준은

정=자기 뜻을 전달하는 표현력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고력, 논리적 비판을 곁들여 글을 구성하는 능력이 기대 이하다. 수능이 여전히 암기 위주여서 글쓰기의 기초가 되는 독서능력조차 요구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박=수능 언어영역에서는 읽기를 측정하는 선에서 끝나는데, 그것마저 텍스트가 길지 않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중등교육이 방기한 글쓰기를 대학이 떠안은 꼴이다.

김=논술 교육 자체도 문제다. 기능 위주로 가르치다보니 학생들의 글이 틀에 박혀 있다. 채점하기가 난감할 정도다.

#글을 잘 쓰려면

정=글을 매끈하게 쓰는 것보다 세상에 대한 분석, 이해력, 자기 주장을 새롭게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글쓰기에 뛰어난 학생이 다른 과목에서 우수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글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인데, 그러려면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주장을 창출할 능력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서적인 요소와 학술적인 요소, 말하자면 표현력과 사고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접해야 한다. 글쓰기를 습관화하면 다른 분야도 훤해진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김=문제를 포착하는 능력과 전공 등 다른 학업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지적 성장을 꾀하는 데는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글쓰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그리고 읽기와 쓰기는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 본인들의 글쓰기 공부법은

박=왕도는 없다. 연애 편지도 때론 효과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지키려면 끊임없이 설득 논리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논리적 구조가 튼튼한 철학 텍스트가 논증적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정=과거엔 문장 교육이 거의 없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글을 많이 쓰면서 표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문학 작품을 많이 섭렵했다. 읽을 때마다 꼭 메모를 했다.

김=일기를 쓰다보니 언젠가부터 이게 내 글이구나 하는 인식이 들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솟았고, 책이나 영화에서 인상 깊은 대목을 글로 남겼다. 감상적인 글보다는 틀이 있는 글을 추구했다. 좋은 글을 접하면 그것을 모방하면서 나의 글을 다듬어나갔다.

#바람직한 글쓰기 교육은

정=글쓰기를 위한 학습, 학습을 위한 글쓰기가 이뤄져야 한다. 모든 교과에서 글쓰기가 활용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총체적 언어학습'이라 해서 범 교과적으로 글쓰기가 이뤄진다. 대학마다 라이팅 센터(writing center)라는 공간이 있어서 늘 교수가 자리를 지키며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한다.

김=우리는 글쓰기 자체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다. 글쓰기를 하나의 전공 영역으로 독립시켜야 한다.

박=미국의 글쓰기 이론이 들어오고 있지만 우리의 실정과는 잘 맞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 맞게 학제간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대학의 투자도 필요하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성균관대의 경우 45명인데 아무리 많아도 30명을 넘으면 곤란하다. 적정선은 20명이다.

정리=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이 책만은 꼭!

박정하 교수

■ 동양철학에세이 (김교빈.이현구 지음, 동녘)

■ 보살예수 (길희성 지음, 현암사)

■ 소크라테스의 변론(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칸트 지음, 이한구 옮김)

■ 불안한 현대사회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 이학사)

김경미 교수

■ 사기열전 (사마천 지음,김원중 옮김,을유문화사)

■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리상호 옮김, 보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이성과힘)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노옥재 외 옮김, 황금가지)

정희모 교수

■ 그리스 비극 (소포클레스 지음, 조우현 외 옮김, 현암사)

■ 군주론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외 옮김, 까치)

■ 인간 본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쿤, 김명자 옮김, 까치)

■ 논어 30구 (유쾌하게 공자읽기)(이인호 지음, 아이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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