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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슬레 임원 박차고 아프간서 ‘희망의 콩 심기’, 권순영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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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그는 네슬레라는 유명 식품회사의 임원이었다. 그러나 돌연 사표를 던지고 폐허의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손에 든 것은 콩 씨앗.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명줄이 타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콩이라는 ‘생명의 싹’을 건넸다. ‘희망의 콩 사업(NEI)’라는 조직을 세운 뒤 30년 전쟁터의 쑥대밭에서 지난 8년간 ‘콩 심기’ 운동을 벌여온 아프간의 식량 구세주, 권순영(62) 박사를 13일 서울 중구 순화동의 NEI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2003년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마자르 이 샤리프. 뿌연 먼지가 날리는 길거리에서 부녀자와 할머니들이 휘청대며 힘겨운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만 같았어요, 못 먹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참담함 그 자체였죠”.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얘기를 듣고 아프간을 찾은 권순영 박사의 뇌리에 박힌 첫인상은 ‘절망’이란 단어였다. “다음에 오면 그 여인네들을 이 세상에서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죠”. 그는 잘나가는 식품영양학자로서 굶주림을 없앨 비법이 없을까 본격적으로 궁리하기 시작했다.

general.korea@neifoundation.org

● 그래서 ‘콩 심기’를 떠올린 건가요.

“영양실조란 학문적으로 보면 ‘단백질 결핍’을 말해요. 이게 없으면 사람은 죽죠. 근육이며 뼈·두뇌에 모두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면역체계 형성에도 간여하고요. 그런데 단백질을 공급하는 경로는 네 가지예요. 고기류와 우유류·계란·콩이죠. 그중에서 콩이 아프간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죠. 고깃간이 있지만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고, 젖소를 키우거나 계란을 접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죠. 콩의 36% 이상은 단백질로 이뤄져 있어요.”

● 아프간엔 콩이 없었나 보죠?

“아프간 농민의 90% 이상은 농사 짓는 법을 잘 알고 있었어요. 광활한 농지도 있었죠. 그러나 농부들은 콩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아프간 농촌진흥청에서 시험 재배를 했지만 널리 퍼지진 않았어요. 콩 심어본 역사가 없는 나라였죠”.

그는 콩이면 명줄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정부 사람들을 찾아갔다. “콩으로 영양 문제를 해결하면 이 나라가 일어서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아프간 공무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7개 시골에서 콩의 시험 재배에 들어갔다. 3년이 지난 2005년 아프간 농축산부가 결론을 냈다. “아프간에 콩을 보급합시다”.

● 난관은 없었습니까.

“시험 재배 이후인 2006년에 씨앗 40t으로 본격적인 콩 심기를 시작했어요. 두 가지 종자를 주로 썼죠. 9개 주 2000여 명의 농부에게 콩 씨앗을 전달했어요. 곡절이야 많았죠. 씨앗을 그냥 먹어버린 사람도 있었어요. 그만큼 배를 주렸다는 얘기죠. ‘먹어 보니 어떻냐’고 물었더니 ‘맛은 좋아요’ 하더라고요”.

● 씨앗은 어떻게 구했습니까.

“재미동포들을 중심으로 NEI 후원자들이 보낸 돈이 큰 보탬이 됐죠. 몇십 달러부터 1만 달러까지 십시일반 응원이 답지했어요”.

● 콩이 실제로 아프간 사람들을 먹일 만큼 도움이 됐나요.

“씨앗 1t을 뿌리면 보통 40t의 콩이 나와요. 여섯 명으로 이뤄진 가구 1만 가구가 석 달간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1000t이면 25만 가구, 150만 명 이상의 소중한 식량이 되는 거죠. 올해 아프간 각지에서 추수하는 양은 3000t 정도 될 걸로 보입니다.”

● 상당한 성과군요. 네슬레 이사라는 좋은 자리를 그만둔 걸 후회하진 않습니까.

“제가 고려대(농예화학)를 나와 76년 미국으로 가서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를 땄어요. 식품생화학과 영양학을 공부했죠. 네슬레에서 주특기는 의료식품 쪽이었어요. 조제분유나 병원에서 쓰는 영양보충제 같은 걸 개발했죠. 그러다 아프간의 아사(餓死) 얘기를 듣게 됐고 해법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식품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면 1.5%만 매출이 늘어도 대성공이라고 해요. 그런데 아프간에서는 콩 심기 두 번째 해인 2007년에 1만 명이 ‘콩을 달라’고 신청해왔어요. 1년 만에 5배의 성과를 낸 거지요. ‘이거구나’ 짜릿한 보람을 느꼈어요. 그런데 네슬레에 재직하면서 아프간에 가자니 쉽지 않았죠. 임원이어서 1년에 휴가를 5주 쓸 수 있었고 아프간에서 모두 사용했지만 그걸론 모자랐어요. 결정할 시점이 다가온 거죠. 고민했어요. 회사가 돈을 잘 벌도록 돕느냐, 한 인간이 영양실조를 벗어나도록 돕느냐,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 쉽지 않은 선택이었네요.

“그때 아프간 사람들 얼굴이 생각났어요. 2005년 아프간 서부에서 주민들을 설득할 때였습니다. 건물이 부서진 시가지에서 유일하게 남은 호텔에서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콩 씨앗도 나눠줬죠. 그런데 돌아간 사람들이 몇 시간 뒤 다시 찾아왔어요. ‘감사 인사를 못 드리고 가서 마을 어귀까지 갔다 다시 왔다’는 겁니다. 그때 ‘마음의 눈물’을 흘렸어요. 결국 아내에게 “22년간 다녔지만 이제 네슬레를 나오면 어떻겠냐”고 물었어요. ‘그래도 하루에 두 끼는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냐’고 했죠. 아내는 제가 아프간과 네슬레 일을 모두 하다간 제명에 못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흔쾌히 아프간 일을 하라고 찬성해줬죠”.

● NEI 조직은 어떻게 꾸려갑니까.

“자원봉사자가 주축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에 본부가 있고 서울·아프간 카불 등에 사무실이 있어요. 후원자는 한국·미국에서 1000여 명 정도 됩니다. 서울사무소의 한혜란 팀장은 대원외고와 미국 명문인 브라운대를 나와 미국의 정보기술(IT)업체에서 컨설팅 일을 하다 지난 5월 합류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젊은이들이 아프간의 ‘콩 기적’ 주춧돌을 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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