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김정일의 평양 만경대지구 건설 현장 현지지도를 수행하고 있는 황장엽씨(오른쪽). [중앙포토]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씨는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렸다. 김일성 체제의 이념적 토대가 된 사상적 틀을 잡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는 망명 하루 전 일본에서 끝난 주체사상 국제세미나에서도 김정일 체제를 찬양했다. 하지만 이튿날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의 문을 들어섰다.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한 염증과 그에 동조해 온 데 따른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말 옛 소련을 방문하는 김일성(왼쪽)을 환송하기 위해 나온 황장엽 당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원 안)와 김정일(오른쪽). [연합뉴스]
황장엽 전 비서가 망명 전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아들 경모씨, 황 비서, 부인 박승옥씨, 며느리. 황씨 가족은 모두 숙청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 출범 5개월 만인 2003년 7월 황씨는 자신의 심복이자 동반 망명자인 김덕홍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사장과 국가정보원의 안가에서 쫓겨나게 된다.
노망명객을 더욱 외롭고 괴롭게 한 건 두고 온 가족 문제였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만난 부인 박승옥(82)씨와 그는 1남3녀를 뒀다. 장남 황경모(50)씨의 처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김형직 사대 교수인 맏딸과 의사인 둘째·셋째 딸, 교수와 당 간부·외교관인 사위들은 황씨의 망명 이후 모두 숙청됐다. 황씨는 북한 당국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부인에 대해 자서전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사죄의 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북 정책의 기류가 바뀌면서 황씨는 운신의 폭을 넓혔다. 지난 3월 말~4월 초 초청 강연을 위해 미국·일본을 방문했고 매주 대학생 안보강연을 하는 등 김정일 체제 비판활동을 벌여 왔다. 황씨는 최근까지 건강한 편이었던 것으로 측근 인사들은 전했다. 탈북자 출신 1호 박사로 『주체사상의 종언』 저자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선생님은 김정은 얘기만 나오면 불쾌감을 크게 나타내면서 ‘그런 철부지 같은 놈 얘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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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의 마지막 편지 공개=탈북자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10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생전에 남긴 친필 서한”이라며 황씨의 글을 공개했다. 황씨가 남긴 친필 편지는 “나는 늙고 무능한 생명이지만 동지들을 위하여 바치겠습니다”는 비장한 문장으로 끝난다. 이 편지는 황씨가 지난달 9일 북한인민해방전선(북민전)이라는 단체의 창립을 축하하며 썼다.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 황장엽 선생님의 마지막 부탁’이란 제목으로 편지를 올렸다. 황씨는 편지에서 “김정일 세습 독재 집단은 최악의 민족 반역 집단이며 우리 민족을 모독하는 흉악한 국제범죄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이영종·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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