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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사설

북한의 조기 권력 이양 움직임 심상치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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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이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권력 전면에 등장한 김정은이 그제는 15만 명 수용 능력의 5월1일 경기장에서 개최된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다. 어제 외신기자들이 초청된 가운데 생중계된 열병식에선 군부대의 열병 신고를 받았다. 권력 후계자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 김정은 3대 세습을 공식화했다.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후계체제 공고화를 위한 굵직굵직한 행사가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조기 권력 이양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물론 후계자로 공인된 이상 김정은에게로 권력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권력 이양과 비교할 때 북한이 서두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은 1974년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한 뒤 이를 6년간 공개하지 않았다. 1980년 후계자 김정일이 공개된 이후에도 군권(軍權)의 공식 이동은 10년 뒤인 1990년부터 가동됐다. 특히 ‘후계자 띄우기’는 권력 이동의 추가 후계자로 급속히 이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황장엽씨는 생전에 “74년부터 85년까지는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 85년부터 김일성이 사망한 94년까지는 김정일-김일성 공동정권이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권력누수 등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김정은 체제의 조기 가시화에 나서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한 김 위원장의 모습은 완연한 병색이다. 오른손 바닥을 왼손 바닥에 치면 왼손이 힘없이 밑으로 밀려났다. 결국 최고지도자는 와병 중이고 스물여섯 살 젊은이가 경제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통치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우리 눈앞에 선명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북한체제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핵과 1000여 발의 탄도미사일을 비롯해 20만 명 이상의 특수전 부대, 600~700여 명의 전문해커 등 비대칭전력은 가위 위협적이다. 김정일·정은 부자가 군을 권력의 핵심기반으로 삼고 있어 군부의 위세도 대단하다. 그런데 군은 본질상 소통과 화해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다. 북한 정찰총국이 주도한 천안함 폭침사건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제부터는 북한에서, 휴전선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 안보가 ‘상시(常時)위험’의 상황으로 들어간 것이다. 북한 급변상황도 더 이상 가상(假想)의 일만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워싱턴에서 끝난 42차 한·미 안보협의회 합의 내용은 바람직했다. ‘북한의 불안정사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넣고 ‘전략기획지침’ 등을 통해 대비책을 강구토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간의 공고한 협력체제도 소중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에서 철통 같은 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아무런 대책이 없어 한잠도 못 잔다”는 고건 전 대통령대행의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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