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반 집 승으로 뒤집힌 반 집 패

중앙일보

입력 2010.10.01 00:48

업데이트 2010.10.01 01:07

지면보기

종합 35면

프로바둑 초유의 해프닝이 발생했다. 옥집을 집으로 알고 사석(死石)으로 메운 사건. 그것으로 반 집 승이 반 집 패로 뒤집힌 사건. 초일류 프로바둑에서도 착각으로 빚어진 반칙과 해프닝은 흔하다. 류시훈 9단은 공배를 메우던 중 상금만 4억원이 넘는 기성 타이틀을 날린 일이 있고 조훈현 9단과 조치훈 9단도 패싸움 중 엉뚱한 착각으로 승리를 헌납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좀 묘하다. “프로바둑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비난과 “축구의 ‘신의 손’ 같은 것. 착각도 승부의 한 부분”이란 옹호가 팽팽하더니 결국 승자 안관욱 8단의 기권으로 이어졌다.

해프닝 #1 계가

두 대국자 옥집을 집으로 착각

A에 두면 무려 28개의 백돌이 죽는다. 그러나 흑을 쥔 김윤영 초단(사진 오른쪽)은 물론이고 백의 안관욱 8단도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계가를했다. A의 곳은 그 바람에 백 집으로 계산됐다.
시니어 대 여류의 대결인 지지옥션배 제17국, 안관욱 8단 대 김윤영 초단이 맞붙었다. 안관욱은 시니어지만 출중한 기력의 소유자로 이미 2연승을 거둔 상태고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인 김윤영이 그의 3연승을 저지하고자 나섰다. 지난달 24일 오후 1시 바둑TV 분당 스튜디오. 바둑은 극미의 형세로 치달아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마지막 초읽기 속에서 대국이 끝났다. 최후의 공배를 흑을 쥔 김윤영이 메웠다. 반 집 승부는 마지막 공배를 메우는 쪽이 진다. 김윤영은 졌구나 생각했다. 잔뜩 흥분한 가운데 계가에 들어갔고 결국 백을 쥔 안관욱의 반 집 승. 생방송 하던 두 명의 프로 해설자는 약간 찜찜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바둑TV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연구생 출신 한 명이 “분명 흑이 반 집 이겼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해프닝 #2 비디오 분석

계가 실수 발견 … 승패 번복 안 돼

인터넷으로 기보를 다시 보며 계가해 보니 과연 흑이 반 집 이겼다. 어찌된 일인가.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 보며 비밀이 밝혀졌다. <기보> A의 곳은 옥집이다. 무려 28개의 돌이 단수로 몰려 있는 상태다. 뒤에 언급한 왕리청 9단처럼 김윤영 역시 빵 따내도 그만이다. 한데 두 기사는 모두 이 사실을 모른 채 계가했다. 비디오 테이프에서 김윤영은 세 번째 사석으로 빠르게 이곳을 메우고 있었다. 바둑TV는 승자 인터뷰를 취소하고 이 사실을 한국기원에 통보한 뒤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하나 책 한 권에 달하는 바둑 규정집에도 이런 상황에 대한 것은 없다. 사무총장이 긴급 의견을 모은 결과 “상대가 반칙 시 즉각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는 규정을 준용해 “이미 결정 난 승부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프닝 #3 기권

‘반 집 승’ 안관욱 신사도 발휘

3연승을 올린 안관욱은 그 뒤 김혜민 4단과의 대국도 이겨 4연승을 올렸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인터넷은 뜨겁게 달궈졌다. “거짓 승리다. 세상이 두 쪽 나도 바둑만큼은 정도로 가야 한다” “옥집도 모른 김윤영의 자살골. 아시안게임 대표인데 걱정이다” 등등.

안관욱 8단은 바둑계의 잘 알려진 ‘신사’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한국기원의 결정이 합리적이라 해도 내용상으로는 내가 반 집을 진 것이다. 더 이상 대국하기 힘들다”며 1일 예정이던 루이나이웨이 9단과의 대국을 포기했다. 안관욱의 기권으로 시니어는 최규병 9단과 조훈현 9단, 여류는 루이나이웨이, 조혜연 8단, 박지은 9단 3명이 남아 있다. 1일 대국은 루이 9단 대 최규병 9단의 대국으로 치러진다.

박치문 전문기자

☞◆해프닝 사례=류시훈 9단은 ‘기성’을 눈앞에 두고 흥분했다. 공배를 메우던 중 단수가 되었는데도 몰랐다. 상대 왕리청 9단이 빵 따내자 기겁했지만 이미 승부는 났다. 4억원이 넘는 상금도 날아갔다. 조훈현 9단은 큰 패싸움 도중 갑자기 착각해 엉뚱한 반 집짜리 패를 따내며 패배했다. 조치훈 9단은 명인전 도전기에서 패싸움 도중 자신이 패를 딸 차례가 아닌데 따냈다. 당연히 반칙 패를 당해야 하지만 그는 기록자에게 내 차례인가를 확인했기에 무승부가 선언됐다. 이외에도 착수 직후 돌을 옮겨 비디오를 통해 손이 떨어졌나를 확인한 뒤 승패가 결정된 경우 등 수많은 해프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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