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發'展 기획 '아트컨설팅 서울']한국 미술 수출 길 열자

중앙일보

입력 200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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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1백년 동안 한국 미술은 대체로 수입상에 머물러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로 전통 미술의 맥이 가물가물해진 뒤였다. 한국 화단은 서양미술을 공부한 유학생들 손과 눈이 지배하는 외제판이 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화풍이 주도권을 잡았고, 이어 미국과 유럽을 직접 다녀온 작가들이 미술판을 휘저었다. 한국 미술 독립과 자립, 그리고 수출은 먼 훗날 얘기였다. 국제적인 여러 '아트 페어(미술 견본시장)'에서 '솔드 아웃(매진)'을 기록한 국내 작가들 사정도 알고 보면 내수용이 많았다.

21세기에는 한국 미술도 수출상이 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25일까지 서울 평창동 서울 옥션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발(韓國發)'전이다. "한국의 회화적 성과를 전세계 유명 화랑 및 미술계에 소개하기 위한 계기로 삼겠다"는 기획의 변이 우렁차다.

공공미술 기획을 주로 맡아온 '아트컨설팅 서울'(소장 박삼철)이 외국에 보낼 도록 제작 등 앞으로 3년 일정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판을 짠 '한국발'전은 "진정한 한국 미술계의 목소리와 이미지를 보여주겠다"는 꿈을 다부지게 펼치고 있다.

참가자 13명은 모두 회화성이 두드러진 작업을 꾸준히 해온 화가들이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 역사와 사회사와 풍토를 겪고 통과하며 여기서 살고 그리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그림을 해왔다.

최민화씨가 내놓은 '분홍' 연작은 80년 광주민주항쟁에 탯줄을 대고 있다. 양아치·부랑아·노숙자 등 떠돌이들이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터뜨렸던 변혁을 향한 열망을 본 최씨는 그들의 오래된 슬픔과 미래에 대한 열정을 분홍색 화면에 담아냈다. 형식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진 그림 속에는 화가 자신도 있었다. 화단의 비주류로 떠도는 작가의 자화상이었다. 분홍이 뿜어내는 기묘하면서도 아릿한 열기는 특수 상황과 보편적 정서를 아우른다.

안창홍씨와 이흥덕씨는 같은 욕망을 다루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안씨가 주관적이며 심리적인 내용을 다소 기괴한 형태로 그렸다면, 이흥덕씨는 한국 사회를 해부하는 '카페' 연작으로 병든 대한민국 현대사를 풍자했다. 남과 북으로 갈린 국토를 상처 투성이 땅으로 드러냈던 송창씨나 숲 속 풍경으로 일그러진 우리 일상을 바라보는 김보중씨 모두 80년대를 몸으로 버텨온 40대 작가들이다.

독일 표현주의가 그랬듯, 이들이 일군 한국풍 해학과 풍자, 은유와 상징은 분단과 독재시대를 바탕에 깐 이야기가 있는 그림으로 읽힌다.

강경구씨는 불탄 산 그림이나 인물화에서 전통 화법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법과 내용 양쪽에서 주목받는다. 조환씨 역시 전통 수묵화를 도시 생활 한복판에 던져 넣고 있어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도시인의 일상을 우화처럼 엮어내는 이석기씨와 김정욱씨도 세계 미술계와 회화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표정이 풍부한 화가들이다.

기획을 맡은 이섭씨는 "기획자가 작위적으로 설정한 주제에 작가의 작품을 꿰맞춰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전락시키는 최근의 몇몇 기획전과 달리, 넓은 의미에서 한국에서 세계로 보내는 이미지이자 메시지를 담는다는 뜻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02-720-102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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