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창작아케이드·체험공방·상인극단…

중앙일보

입력

허름한 가게 간판은 예술작품이 됐다. 솜씨 좋은 수예점 주인은 주민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치고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문화예술 체험을 한다. 요즘 전통시장의 모습이다. 문화예술을 덧입은 전통시장이 예술가·상인·주민이 소통하는 지역 문화사랑방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흐르는 시장
“젊은 작가들 덕분에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죠.” 황학동 신당지하상가(중앙시장 지하)에 들른 서화자(60·중구 황학동)씨의 말이다. 이곳은 한때 명동 다음으로 잘 나가던 서울의 중심 상권이었으나 외환위기와 경제침체 등을 겪으면서 점포 99개 중 52개가 텅 빌 정도로 쇠퇴했다. 지금은 서울시의 창작공간 조성사업인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지난해 10월 문을 열면서 젊은 공예작가들 40여 명과 상인들이 함께하는 이색 문화시장으로 거듭났다.

창작아케이드가 들어서면서 우선 가게들이 멋스러워졌다. 입주작가들이 상인들과 의논하면서 가게 간판부터 인테리어·소품까지 새롭게 꾸민 ‘흥+정 프로젝트’ 덕택이다. 횟집 ‘물고기자리(구 충남수산)’ 꾸미기에 참여한 공예작가 김도진(35)씨는 “기존 가게의 분위기를 지키면서 좀 더 깔끔한 디자인 요소를 가미했다”며 “가게에 손님이 늘어 보람되다”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상인들은 예술가의 손이 닿은 가게를 얻고 작가들은 생활예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의 작업은 작가들의 작품 방향에도 영향을 줬다. 이곳 프로젝트의 일러스트 작업을 도맡고 있는 ‘페코 마트’의 이성진(29)·이민혜(25)씨는 “상인들과 함께하는 작업이 새롭고 신선하다”며 “시장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상가 내 공방을 찾는 지역민도 늘었다. 특히 인기 있는 곳은 도자기·액세서리·책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공방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1~5시에 운영된다. 참가비는 무료다. 상가의 상인이 강사로 나선 공방도 있다. 뜨개질만 20년 넘게 해온 ‘청실수예’의 강연미(49) 사장이 지난 3월 문을 연 공방으로, 친환경 수세미·팔찌·바구니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9월 18일까지 토요일마다 열리는 아트마켓도 볼거리다. 신당창작 아케이드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살 수 있는 장터다.
 
어린이 캠프, 등산객 주막에 음악회까지

수유마을시장은 지난해 7월 문전성시 프로젝트(문화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를 시작하면서 문화강좌 공간인 ‘다락방’‘한 뼘 부엌’‘마을작업장’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난타·댄스스포츠·목공·종이공예·컴퓨터교실 등의 강좌가 진행된다. 수강료는 무료다. 이달 말까지 매주 주말(금~일요일)에는 ‘어린이 시장여름캠프’도 개최한다. 시장에서 장보기, 구매한 식재료로 요리하기, 시장보물찾기 등 전통시장 탐방프로그램으로 미래 고객인 아이들이 시장에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 8월 첫 주 캠프에 참가했던 조민아(초4)양은 “혼자 장을 보고 요리를 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9월부터는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에 ‘콩자반 요리교실’을 열고 어린이 강좌를 이어간다. 주민 사랑방인 생생클럽도 마련했다. 상인회 사무실은 올 하반기에 도서관으로 꾸밀 예정이다. 수유마을시장 프로젝트 매니저 전민정(37)씨는 “전통시장은 시각·후각·촉각 등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활기 넘치는 공간”이라며 “싱싱한 먹을거리로 지역 주민들의 냉장고 역할을 하는 전통시장에 문화가 더해져 더 흥미로운 곳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민과의 소통에 상인들도 적극 나섰다. 올 하반기 음식점에서 친환경 EM세제를 사용하고 다문화 여성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상인들이 직접 기획하고 있다.

지난 5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림시장(중랑구 망우동)은 등산객 주막이 인기다. 이곳은 조선시대 마장동 소시장으로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던 주막이 있던 자리다. 주막은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 오후 4시부터 연다. 지역단체들이 운영하고 수익금은 지역 복지단체 등에 기부한다. 오디션을 거친 주민과 상인 35명이 이끌어가는 상인극단, 가요와 풍물을 배우는 ‘시장통학교’, 어린이 문화예술체험 프로그램인 ‘봄 그리고 우리시장’, 자전거 무료 서비스 등도 지역민들로 하여금 시장을 찾게 하고 있다. 9월부터는 주부들이 마음 편히 장을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한 예술강좌(오후 4시)도 열 계획이다.

성남 상대원시장(성남 중원구)의 원다방도 지역 내 문화공간의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다. 원다방은 소통 공간인 사랑방과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으로 꾸몄다. 한 달에 한 번 작은 음악회도 연다.

[사진설명] 1. 공예작가들이 만든 한지 조명을 천장에 장식해 한층 화사해진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의 전경. 2. 뜨개질의 달인으로 체험공방의 강사가 된 상인 강연미씨(가운데)와 섬유작가 추영애, 도자공예작가 김도진,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이성진씨(왼쪽부터).

<이세라·신수연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황정옥">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