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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보호 위해 '바지 두목' 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법무부장관·검찰총장의 사퇴를 몰고온 피의자 趙모(30)씨 구타 사망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달아났다가 자수한 공범 崔모(30)씨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그가 속해 있던 파주 스포츠파의 면모가 드러났다.

검찰은 구타 사망사건 이후 1998년과 99년 두건의 살인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한 朴모씨 등 3명을 석방했다. 하지만 공범 가운데 崔씨와 살인 혐의를 첫 자백했던 張모씨는 각각 도박장 개장과 강간치상 혐의 등 다른 사건으로 구속했다.

검찰은 崔씨 구속영장에서 "스포츠파는 93년 4월 파주시 금촌 일대의 유흥주점을 장악하기 위해 결성된 신흥 폭력조직"이라고 밝혔다.

스포츠파라는 명칭은 이들이 헬스클럽에서 서로를 알았거나, 스포츠마사지업의 이권에 개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검찰은 분석했다.

이들은 "금촌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조직의 선배 말에는 절대 복종한다. 또 조직원들이 구타당하면 즉시 보복한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또 복장은 통바지로, 머리는 스포츠형으로 통일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두목은 申모씨임에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대외적으로는 金모씨를 두목으로 알렸다. 조직의 우두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바지 두목'을 내세웠던 것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바지 두목인 金씨가 申씨와 비슷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朴모씨 쪽으로 기울면서 조직 내분이 커졌고 결국 수감 중이던 申씨가 98년 6월 "朴을 작업하라"는 살인 밀지를 조직원들에게 내리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검찰 조사 결과 이 밀지는 조직원들이 파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근안 전 경감이 민청련 의장이던 김근태씨를 고문했을 때 金씨가 고문의 증거라며 피딱지의 존재를 주장했다. 당시 딱지의 실체는 없었지만 그 진술이 구체적이어서 증거로 인정된 바 있다. 밀지 역시 실체는 없지만 간접 증거는 된다"면서 "앞으로 이들의 살인 혐의를 꼭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pine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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