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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7회지방분권앞장선지식인.NGO]"들러리는 그만" 힘얻는 分權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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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달 17일 강원도 춘천의 세종호텔. 전국에서 모인 2백여 학계·시민단체·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지방분권과 국가개혁을 주제로 난상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이양, 지방경찰제 실현, 교육자치 틀의 변화, 지방의원 유급제 등을 제시했지만 뭐 하나 이뤄진 것이 없다. "(경기대 이재은 교수)

"통일신라 이후 지금까지 중앙집권체제가 이어져 오면서 수도권 집중이 심화돼 불균형의 국토, 분열의 국토로 전락했다. "(한림대 성경륭 교수)

"지역 균형발전과 자치권 확대를 위해 전국 시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청주 경실련 이두영 사무처장)

"지방의 여건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물러날 곳도 없다. "(경북대 김형기 교수)

"지역별로 지방분권운동을 위한 연대 틀을 조직하고 전국 차원의 연대로 확대시키자. "(부산 참여자치연대 박재율 사무처장)

이날 논의의 핵심은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방분권운동 전국조직 준비위원장인 경북대 김형기(49·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지방의 황폐화가 국가 차원의 문제로 제기된 지는 오래됐지만,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범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분권화 외치는 지식인·NGO

지방의 학계·종교계·여성계·법조계과 시민단체가 지방분권을 위해 네트워크화하고 있다.

지난 4월 대구·경북지역 지방분권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데 이어 지난달 14일에는 대전, 30일에는 부산지역 운동본부가 출정식을 가졌다. 현재까지 분권운동본부에 참여한 지방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전국에서 3천여명에 이른다. 11월 7일에는 경북대에서 전국 6개 지역 대표 5백여명이 연대 조직체인 '지역 균형발전과 민주적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분권 국민운동'을 출범할 예정이다.

이 같은 분권운동의 축은 크게 세개다. 지방대 교수와 지역 언론인·법조인·의료인, 각종 비정부기구(NGO)단체,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중심이다. 처음엔 교수들이 분권운동의 주축이었으나 YMCA·경실련·참여자치시민연대 등 NGO들이 동참하면서 국민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비수도권 12개 시·도 단체장들도 최근 연합체 구성을 모색 중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8개 시·도의 기획관리실장들은 이미 '영·호남 국토균형발전 추진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된 중앙정부의 결정권·세원·인재를 대거 지방으로 넘겨 서울과 지방이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 확산될 것입니다. "

대전대 안성호 교수는 "그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소외된 지방의 실태를 짚어가며 대안을 모색해왔는데 모든 논의의 귀결점이 '분권'으로 수렴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집중이나 이에 따른 지역적 불균형도 따지고 보면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란 얘기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는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줄 때"라며 "앞으로 시민들을 상대로 지방분권 특별법제정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한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도 "기득권을 가진 중앙 정부와 서울 등 수도권 사람들이 알아서 정치·경제력을 지방에 나눠주는 것을 기다려서는 곤란하다"며 "선진국에서도 지자체와 지역 지식인, 주민들이 나서서 행동으로 운동을 벌이면서 이를 쟁취했다"고 강조했다.

광주대 이민원 교수는 "지방이 정치·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요즈음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방분권운동의 적시"라며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이를 끌고가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대학 총·학장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달 17, 18일 전북 군산대에서 열린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회장 정석종 전남대총장)에 참석한 국·공립대 총장들은 "지방대 육성 특별법과 지역인재 할당제 등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참여·제도개혁으로 실질적 자치 돼야

강원대 이선향 교수는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에 의한, 지역주민을 위한, 지역주민의 행정이 요체다. 이를 위해 중앙권한을 이양할 때 입법권도 함께 넘기고, 재원확보 방안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주민발의제의 활성화와 주민투표제·주민소환제의 도입도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주민발의제는 2000년 도입됐지만 지금까지 조례안이 만들어진 지역은 17곳뿐이다. 이 중에서 지방의회를 통과해 확정된 발의안은 과천시의 보육조례안 등 단 3개에 불과하다. 李교수는 "절차가 까다롭고, 설령 발의가 되더라도 자치단체가 거부하면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주민발의를 하려면 유권자 20분의1 이상의 서명을 받도록 되어 있어 서울시의 경우 14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안산시의 경우 지난 4월 시민 1만여명이 서명해 안산시와 시의회의 판공비 공개를 핵심으로 하는 조례안을 만들었는데 시의회가 판공비 지출내역 공개 조항을 빼고 제정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주민투표제도 법적으로 불완전하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 등에 대해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으나 투표절차를 규정하는 '주민투표법'이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지금까지 주민투표를 실시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이유다. 지방정부 재원의 투명한 배분을 위해 예산의 기획단계부터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예산위원회, 지방정부의 행정행위를 감시할 주민협의회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림대 성경륭 교수는 "전국 지사·시장회의를 법률로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대통령이 주재하는 시도지사회의가 있지만 법정화·정례화되지 않고 임의적이어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지사·시장회의에서 각 단체장들이 자신의 지방적 이익과 관심사를 전국적 차원에서 제기하고 상호 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지방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과 관련해 예산안제출권, 자원배분 심의권, 법안심의권 등을 부여하면 훨씬 실질적으로 균형·조정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기대 이재은 교수는 "지방분권의 선결 요건은 재정분권"이라고 단언한다.

지방재정의 자주성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실질적 자치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재정확충을 위한 국세와 지방세 세원의 전면 재배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분권 국민운동 10대 의제

1. 행정수도 지방 이전, 중앙행정부서의 지방 이전

2. 기관위임사무 폐지 및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 이양

3. 지방소득세·지방소비세 도입 및 지방교부세 인상

4. 지방대학육성특별법 제정 및 인재 지역할당제 도입

5. 정당공천제 폐지 등 지방정치 자율성 확보

6. 자치경찰제 도입과 교육자치 개선

7. 지역금융산업 육성 및 지역발전특별기금 조성

8. 주민참여제도 도입

9. 지역과학 진흥과 기술혁신 촉진

10. 지역언론 육성 및 지역문화·정보 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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