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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저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상에는 두가지 큰 저울이 있다(天下有兩大衡).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이며,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이다(一是非之衡 一利害之衡也). 이 두개의 저울에서 네가지 등급이 생겨난다(於此兩大衡 出生四大級). 제일 고급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다(凡守是而獲利者太上也).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고(其次守是而取害也),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其次趨非而獲利也). 최하급은 그른 것을 추구하다 해를 입는 것이다(最下者 趨非而取害也)."

조선조 후기의 선각자 다산 정약용(1762∼1836)선생이 1816년 5월 유배지(전남 강진)에서 큰아들 학연에게 보낸 한문 편지의 일부다.

다산의 산문들을 모은 『뜬 세상의 아름다움』 (태학사·박무영 역)은 이 편지가 아비의 오랜 유배생활을 끝낼 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아들을 짐짓 나무라는 글로 풀이하고 있다. 다산은 1810년 9월에 사면이 됐으나 반대파들의 방해로 유배 해제를 위한 공문 발송이 이뤄지지 않은 채 8년을 더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아들 학연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산에게 반대파 권신들 앞으로 '선처'를 호소하는 서한을 보내달라 애원했다. 다산의 거절은 단호하다. 그런 서한이야말로 반대파들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며, 애써 지켜온 소신마저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걸한들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 그들이 득세하여 다시 요직을 차지하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어찌 공문 발송 같은 작은 일 때문에 절개를 잃을 수야 있겠느냐." 다산은 달래듯 아들에게 말한다. "내가 절개를 지키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세번째 등급도 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최하급이나 면하려는 것 뿐이다."

통찰력이 있는 글은 언제 읽어도 새롭다. 다산의 글은 2백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의 세상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특히 '철새' 바람으로 어수선한 정치판에서 되새길 만한 메시지다. 유권자들은 한없이 무지한 것 같지만 결국은 시비(是非)와 이해(利害)의 저울로 정치인들을 달아서 최상급과 최하급을 가려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4월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전 국무위원들에게 『완당평전』 (유홍준 저·학고재)과 함께 이 책을 선물했다. 궁금하다. 다산의 저울은 金대통령에게 어떤 등급을 매겼을까.

손병수 Forbes Korea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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