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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心을 움직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2면

현모양처가 여성의 유일한 미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고학력·핵가족·맞벌이 시대를 맞아 여성이 남성 못지 않은 능력과 경제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연히 입김도 세져 여성을 깔보는 소리는 이제 좀처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광고에서도 마찬가지. 아름답고 상냥한 주부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며 남편의 사랑과 가족의 행복만을 얘기하던 광고와는 달리 요즘의 광고에서는 세련된 전문직 여성들이 떳떳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그만큼 당당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년 전 처음 방송된 LG 디오스 '여자라서 행복해요' 광고는 충격이었다. 물론 행복을 속삭이는 한, 여성 타깃의 광고는 실패할 확률이 낮다. 남성보다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여성들은 그만큼 더 행복과 사랑에 민감한 법이니까.

하지만 '여자라서'라니. 현대의 여성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능력을 갈고 닦아 행복을 누리는 존재다. 직장이 있는 여성은 물론 가사에만 전념하는 전업주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만의 센스와 노하우로 가정과 가족을 보살피며 남부럽지 않은 당당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최소한 유능한 남성의 사랑을 받는 여자인 것만으로 행복에 겨워하는 여성은 이제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고급 냉장고 하나만으로 행복해 하는 수동적인 여성을 묘사한 그 광고를 보며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마땅히 분개했어야 한다. 그러나 디오스의 '여자라서 행복해요' 광고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광고의 인기에 힘입어 매출도 상당히 올랐다고 한다. 심은하의 행복과 사랑이 여심(女心)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먼저 모델을 보자. 그녀만큼 세련되고 품위있는 모델은 드물다. 그런 그녀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스위스 요리를 만들거나 와인을 마시며 목욕을 한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조수미가 부르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배경음악도 단단히 한몫 한다.

자칫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카피였지만 음악·모델·이미지의 세련미에 힘입어 오히려 소비자의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후 대형 냉장고 광고가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아름답다는 것만 보아도 심은하의 광고는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대형 냉장고가 널리 퍼지고 타깃의 연령층도 낮아짐에 따라 최근 디오스는 보다 밝고 명랑한 김희선으로 모델을 바꾸었다. 여성들이 심은하의 우아함과 김희선의 명랑함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지켜보는 일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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