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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자서전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나는 어제도 군인이었고, 오늘도, 내일도 군인일 따름이다."

12·12 사태 때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鄭昇和) 전 육군참모총장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鄭전총장은 지난해 10월 아들들의 권유로 병석에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녹음한 내용을 대필작가가 원고로 정리하면, 鄭전총장은 원고를 꼼꼼하게 다시 읽고 수정 작업을 했다. 탈고한 다음날 입원해 한달이 채 안된 지난 6월 그는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자서전의 일관된 기조는 군인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본인은 1987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의 요청으로 정치 외도를 한 적이 있으나, 파란 많은 현대사 속에서 군인의 길외에 곁눈질을 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10·26의 밤, 12·12 상황에 대해 담담히 적고 있다. 鄭전총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그 시각,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초대로 서울 궁정동 안가 부근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계엄사령관이었던 그는 12·12때 신군부 측에 체포돼 내란방조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이후 鄭전총장은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으며 97년 7월 무죄를 선고받고 17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鄭전총장에 따르면 궁정동에서 몇 발의 총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오발된 것으로 여겼을 뿐이며 김재규가 고함을 질러 나갔을 때는 만찬 중인 대통령이 부르는 줄로만 알았다는 것이다. 김재규의 차에 타고서야 행선지가 청와대가 아니며 대통령이 시해된 사실을 김재규에게 들었다고 한다.

鄭전총장은 12·12와 관련,"전두환 등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구체적 시나리오를 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신군부가 애초에는 군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자신을 밀어내고 군권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 뒤 강력한 국민 반발과 광주 민주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사태가 커지자 사후 안전을 위해 국권까지 탈취하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그는 내렸다.

방첩부대장 시절 노태우 대위가 정보과 일에 유달리 애착을 보였다는 이야기,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낼 때 박지만 생도의 학부형 자격으로 육사를 찾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들을 보며 흐믓해하던 이야기 등 많은 일화가 책에 실렸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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