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 개통식날 맘껏 질주 朴대통령 "휙 지나간 차 잡아와라"

중앙일보

입력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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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영화배우 신성일씨와 자동차의 인연은 영화에서 시작됐다.

신씨는 1962년 '위로 보고 걷자'에 출연해 빨간 스포츠카를 몰아보고 자동차에 흠뻑 빠졌다. 5백㏄ 2인승 일제 스포츠카를 시작으로 68년까지 지프 등 여러 차를 구해 탔다.

스피드광인 신씨는 68년 서울 중앙극장에서 상영한 '불릿'의 주연 배우 스티브 매퀸이 몰고 질주하는 빨간 무스탕을 보고는 넋을 잃었다. 매끈하게 잘 빠진 차체와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강력한 힘에 반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과소비를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외제차 수입을 엄격히 규제했다. 더욱이 외제차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수입쿼터가 있어야 했다.

당시 정부는 수출 실적이 있는 기업에 수입쿼터를 줬다. 그는 대우실업에서 쿼터를 사 69년식 신형 무스탕을 어렵사리 손에 넣을 수 있었다. 8기통 7천㏄ 3백75마력의 막강한 힘에 최고시속이 1백90㎞였다. 가격은 6백40만원이었다. 당시 신씨가 2백40만원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으니 엄청나게 비싼 차였다. 톱스타 신영균씨도 무스탕을 구입하려 했으나 재고가 없어 무스탕과 비슷하게 생긴 V8 2백50마력의 빨간색 머큐리 쿠거를 사는 데 만족해야 했다.

신성일씨는 틈나는 대로 무스탕을 몰고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차의 성능을 발휘할 찬스를 갖게 됐다. 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는 날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에서 개통 테이프를 끊고 서울로 시주(始走)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기가 솟았다.

박대통령이 부산을 출발한 시각에 그는 서울 톨게이트를 출발했다. 시속 2백㎞에 육박하는 스피드로 경부고속도로 서울~부산 구간의 중간 지점인 영동을 지날 때까지 대통령 일행과 마주치지 못했다. 추풍령을 뒤로 하고 19분 더 달렸을 때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오는 한 무리의 차량을 만났다. 신씨는 '내가 이겼다'며 쾌재를 부르고 냅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며칠 후 평소에 알고 지내던 경호실장 박종규씨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박대통령이 "저 빨간차를 몰고 휙 지나가는 놈을 당장 잡아와라"고 호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급 배우여서 간신히 용서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석유파동이 닥쳐오자 '애마' 무스탕과 이별했다. 대신 국산차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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