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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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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는 깃발 가운데에 넓은 붉은 폭이 있고 그 아래 위에 가는 흰 폭이 있으며 그 다음에 푸른 폭이 있고 붉은 폭의 깃대 달린 쪽 흰 동그라미 안에 붉은 오각별이 있다. 깃발의 세로와 가로의 비는 1대 2다."

1998년 개정된 북한 헌법 164조가 규정한 인공기(人共旗)의 모양과 색깔이다. 인공기를 북한에서는 '남홍색(紅色)공화국국기' 또는 '홍람오각별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8·15 해방 후 3년간은 각종 공식 행사장에 태극기가 내걸렸다. 태극기는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나 광복군뿐 아니라 좌익계 독립운동가들의 국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레닌이 1921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원동피압박민족대회에서 연설할 때 대표로 참석한 일단의 한인들도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해방 후 건국작업을 진행하던 북한은 47년 11월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꾸려 이 조직 안에 미술가들을 배치했다. 국기와 국장(國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북한측 자료에 따르면 인공기의 기본 색상은 각각 '혁명가들이 흘린 피와 혁명역량'(붉은색), '유구한 문화를 가진 하나의 민족국가'(흰색), '인민의 기백과 공화국의 자주권'(푸른색)을 상징한다. 48년 2월 초순 김일성 당시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이 "흰 동그라미 안에 인민의 용감성과 영웅성을 보여주는 오각별을 넣는 게 좋겠다"고 지시함으로써 기본도안이 완성됐다고 한다. 인공기는 북한 정권 수립일 전날인 48년 9월 8일 헌법 초안과 함께 정식으로 채택·공포됐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은 금에 자원도 가득한'으로 시작되는 북한 국가(애국가)는 이보다 앞선 47년 9월에 정해졌다.

옛동독은 49년 정부수립 당시 과거 독일제국 이래의 삼색기를 바탕에 깔고 망치·콤파스 등을 새로 그려넣은 국기를 채택했다. 때문에 서독 국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반면 북한은 태극기와 완전히 다른 국기를 제정함으로써 남한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에게 아직도 인공기는 북한의 상징깃발이라는 차원을 넘어 무력남침과 동족상잔, 최근의 서해교전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다음달 말 열리는 아시안게임 경기장에 불가피하게 인공기가 등장하게 된 만큼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재현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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