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물감이 튀는'美의 五感'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퍼포먼스를 업이나 부업으로 삼고 있는 퍼포머들의 모임인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야심찬 기획을 내놓았다. 지난 7일 시작, 31일까지 홍대 부근 전시공간 쌈지 스페이스, 전문 공연장 씨어터 제로와 명월관·SAAB 등 9개 음악 클럽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2002 한국 실험예술제-한국 퍼포먼스 30년'이 그것이다.

그런데 퍼포먼스 하면 왜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철학자 박이문은 저서 『예술철학』에서 '예술작품의 가치는 미적(美的) 가치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거창하게 철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중은 예술작품에서 일차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길 기대한다.

과거 '해프닝''이벤트''행위예술'로 불렸던 '퍼포먼스'는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그런 관람객들의 상식적인 기대에서 가장 동떨어진 예술 장르 중 하나일지 모른다. 여차하면 벗거나 스스로를 밧줄로 꽁꽁 묶는 등 일반 대중의 머리 속에 각인된 퍼포먼스는 괴짜 같은 예술가들의 별난 발산, 이런저런 문화행사전에 가끔씩 분위기를 띄우는 순서로 여겨질 뿐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아름답기는커녕 난해하다는 지적에 대해 실험예술제 운영위원장을 맡은 김백기 KoPAS 대표는 "퍼포먼스는 결코 난해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김위원장의 퍼포먼스론(論)에 따르면 "회화·조각 등 정지돼 있는 미술 형태에 만족하지 못한 미술가들에게 하나의 돌파구로 떠오른 장르가 퍼포먼스"다.

기존 미술의 한계로 지적되는 소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각은 물론 청각·후각·촉각 등 오감의 자극을 노리다 보니 음악·무용 등 다른 장르의 특징들을 수렴하게 됐다. 어떤 이념이나 주장, 예술가 스스로가 표현 대상이라는 점에서 다른 미술 장르와 다를 게 없고, 오히려 관객 앞에서 직접 실연한다는 점에서 전달·소통 효과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마음의 문을 조금만 더 열고 다시 퍼포먼스 이해에 도전한다면 뭔가 보일 듯도 하다. 예술제의 가장 큰 특징은 1960년대에 미술판에 처음 퍼포먼스를 선보인 무세중·성능경 등 1세대, 다양한 형식을 실험했던 80년대의 김석환·황민수 등 2세대, 개인의 내면·신체 등을 탐구한 90년대의 이혁발·이윰 등 3세대, KoPAS 주축의 4세대 등 한국 퍼포먼스사(史)의 산 증인 7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다.

17일부터 25일까지 씨어터 제로와 홍대 앞 9개 클럽을 요령있게 순례하면 땀과 침, 물감이 튀고 작가와 관객간 감정이 교통하는 퍼포먼스의 진면목을 일견하게 된다.

전기간 문을 여는 쌈지 스페이스의 퍼포먼스 영상·사진전은 일종의 분위기 띄우기 용이다. 주요 퍼포머들의 공연 장면을 찍은 사진·녹화 테이프 등을 볼 수 있다.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봐 걱정된다면 쌈지 스페이스를 먼저 찾자. 테이프 시청만으로도 퍼포먼스의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퍼포머들의 진지함에서는 아름다움도 느끼게 될 듯 싶다. 02-322-2852.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