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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눈부신 업그레이드 '돌아온 토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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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5년 전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애송이 배우가 이제 스타로 금의환향했다. 능글맞을 정도의 여유도 생겼고, 판을 읽는 안목도 제법이다. 그래서 이 괄목상대의 인물을 뮤지컬계 '새 스타' 정도의 수식어로 대접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뮤지컬 전문 배우가 생긴 지 길어야 20여년 안팎. 남경주·최정원 등이 전문 배우시대를 개척한 1세대라면, 이 사내는 그 뒤를 잇는 2세대의 선두에 서 있다.

주인공은 지난 6월 말 막을 내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의 연적 라울로 출연한 유정한(31)이다.

유씨는 1997년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데뷔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한국 공연계에 '기업형 제작시대'를 연 삼성영상사업단이 의욕적으로 선보인 대작이다. 총 제작비 19억원. 유씨는 이 영광스런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5백대1의 오디션을 뚫고 주인공 토니 역에 발탁됐다. 상대역 마리아 역은 미 브로드웨이 출연 경력이 있던 최주희였다.

유씨의 출발은 이렇게 화려했다. 그러나 갓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준비 안된' 초년병에게 그것은 오히려 부담이었다. 이후 뮤지컬·연극 등을 넘나드는 실험기를 거치며 절치부심했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왕자병기가 있던 '꽃미남'은 나름대로 완고한 계보가 있는 뮤지컬계의 텃세를 헤쳐나가기엔 너무 여렸다.

국제기준의 새로운 문법이 통하는 '오페라의 유령'의 오디션은 그에게 복음이었다. 대여섯 차례나 진행된 오디션에서 유씨는 라울 역으로 낙점을 받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유씨는 뮤지컬 본바닥인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도 유령 역에 가려 보이지 않던 라울 역을 눈에 띄게 만드는 뒷심을 보였다.

"데뷔 시절 내 연기와 몸짓은 나무 위를 걷듯 불안했다. 그러나 지난 몇년의 슬럼프는 약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을 하면서 비로소 노래와 연기,그리고 남과 어울려 만들어 내는 앙상블의 미학을 깨달았다." 이런 그를 보고 팬들은 회원이 9백여 명에 이르는 '오빠부대' 클럽을 만들었다. 뮤지컬 배우로선 드문 호사다.

5년 만에 다시 출연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8월 23일~9월 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부인할 수 없는 유씨의 금의환향 무대다. 그때처럼 토니 역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크리스틴의 대역(얼터니트)이었던 신예 김소현이 상대역이다. 두 사람은 공연기간인 17~18일 서울시향과 '오페라의 유령' 팝스 콘서트에도 출연한다.

"출연이 확정된 뒤 데뷔공연 테이프를 다시 보았다.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쑥스러웠다. 당시엔 최선이었으나, 노래를 빼곤 모두 엉망이었다. 서툴던 과거를 알았으니 더 이상 시행착오는 없을 것이다."

유씨의 출연작은 뮤지컬·연극 등을 합해 7편이다. 한해 한 작품 정도의 과작인 셈이다. 그건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유씨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지만 '무대를 너무 두려워했다'는 표현이 맞다. 악착같은 프로 근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된다.

"한때 배우를 그만둘까, 회의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뮤지컬 배우로 행복하다. 고인 물이 안되도록 나를 담금질하는 그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유씨가 허한 가슴을 열었다. 그는 노래와 춤, 연기가 좋아서 맹목적으로 뮤지컬에 빠졌던 선배 세대와는 다른 성장 배경을 거쳤다. 정통 성악 전공자로서의 탄탄한 기본기는 선배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장점이다. 급성장세인 한국 뮤지컬은 이제 배우의 개성과 장기에 맞는,역할 구분이 뚜렷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유씨는 이런 격변기에 가장 유심히 지켜봐야 할 스타다.

글=정재왈,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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