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부르는 재앙

중앙일보

입력 200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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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권력이란 정말 요상한 것이다. 명예와 돈과 위엄을 만들어내는 도깨비방망이 같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패가망신시키는 재앙덩어리 같기도 하다. 정권의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권력은 급격히 도깨비방망이보다는 재앙덩어리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최근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이 권력 때문에 망했다. 신승남(愼承男)전 검찰총장을 보자. 지금 그의 동생과 여동생은 감옥에 가 있거나 갔다 왔고 그 자신은 기소된 신세다. 그에게 권력이 없었던들 그런 재앙이 그 집안에 닥쳤을까. 안정남(安正男)전 국세청장도 마찬가지다. 4·19정신과 애국가 4절을 호기롭게 떠들며 신문사를 칼질하던 그가 지금은 국내에도 살지 못하고 외국 어느 구석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처지다. 국세청장이 안됐던들 그의 알짜배기 대치동 재산이 들통나지도 않았을 테고 등 따스고 배 부르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愼씨와 安씨의 경우 권력이 원수라는 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장상(張裳)총리내정자에게 권력이 영광인지 재앙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그 역시 총리에 지명되지 않았던들, 또는 총리 제의를 거절했던들 아들의 국적이나 의료보험문제 또는 10여년 전에 사둔 땅 문제 따위로 요즘처럼 심란한 일은 안 당해도 좋았을 것이고 명성 높은 전직 대학총장으로, 여성계 지도자로 편안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권력 때문에 인간적 불행을 겪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아마 DJ일가(一家)일 것이다. DJ가 대통령이 아니었던들 그 아들들과 아들들의 친구까지 감옥에 가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처조카인 이형택(亨澤)씨나 집사라고 불린 이수동(守東)씨 같은 사람도 유능한 금융인, 근실한 생활인으로 평범하면서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 비록 권력 덕분에 위세도 부리고 돈도 마음껏 썼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감옥생활이 그것으로 상쇄된다고 하긴 어렵다.

DJ 본인으로서도 대통령이란 최고의 자리에 올라 평생의 포부를 펼치고 노벨상까지 타는 최고의 명예와 존경을 누렸지만 그런 영광이 아들 둘을 감옥에 보낸 고통을 감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자기의 명예와 권력이 높은 그만큼 아들의 재앙은 더 큰 고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권력이 영광과 재앙의 두 얼굴을 갖고 있고 권력자가 재앙을 줄이는 방법은 권력의 자제밖에 없다는 사실은 수천년 전부터 아는 사실이지만 알면서도 같은 과오는 반복되고 있다.

권력이 재앙을 부르는 것은 법과 상식으로 할 일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그 속성 때문이다. 특히 그 재앙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권력을 사용함으로써 더 큰 재앙을 부르는 것도 역사에서 흔히 보아 온 일이다. 임기말 권력재앙으로 고통받고 있는 DJ정권도 더 이상 권력으로 재앙을 만회하거나 줄여볼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홍업씨 기소 다음날 개각 발표가 있자 홍업씨 사건 기사가 언론에서 쑥 들어갔다. DJ는 아들들의 비리문제에 관해 사전보고를 못 받았다고 한다. 아태재단은 개편해 계속 유지한다고 하고 차남에게 돈 준 임동원(東源)·신건(辛建)씨는 유임시켰다. 이런 일은 재앙을 법이나 상식으로 풀어보려는 자세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대목들이다.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하면 대통령 자신은 편해질지 모르나 보고할 입장에 있는 다수 부하들을 문책 대상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DJ가 과연 문책을 결심하고 그런 말을 했을까. 그렇다면 왜 아직 문책은 없는가. 또 아들에게 돈을 바쳤거나 말거나 총애하는 부하를 유임시킨 일이나 아태재단에 대한 언급 들을 보면 계속 권력으로 밀어붙인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그렇잖아도 사람들은 법무부에 대한 청와대압력설은 뭣인지, 공직자 중에 ·辛씨만 돈을 줬는지, 차남 아닌 다른 아들에겐 안 줬는지, 삼성·현대 외에 돈 준 재벌은 없는지… 등등 허다한 의문들로 말이 많다. 이런 의문들이 풀리지 않는 한 재앙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DJ일가의 고통도 계속될 것이다. 의문을 푸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법과 상식이다. 재앙은 개각·홍보·압력 등 권력작용으로는 줄어들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법과 상식에 따라 밝히고 처리해야 비로소 종결된다.

권력이란 술과도 같아서 강한 중독성이 있고, 잘 쓰면 약이 되고 못 쓰면 독이 된다. 알콜중독이 술을 끊어야 낫듯이 권력재앙도 권력집착에서 벗어나야 확대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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