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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기자의 길맛, 맛길 ① 가회동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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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고급 옷집·액세서리점, 우아한 찻집 이어져

‘북스쿡스’의 실내 풍경. [김상선 기자]

헌법재판소 앞부터 가회동성당까지 이어지는 1㎞ 정도의 길이다. 4차선 도로가 언덕을 향해 죽 뻗어 있는데 정작 길 위를 달리는 차는 몇 대 없다. 그래서 도로 양쪽을 오가며 슬슬 걸어 다니기 좋다. 굳이 ‘무단횡단’을 권하는 이유? 길 양쪽으로 둘러볼 만한 옷·액세서리 집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한송의 ‘트로아’를 비롯해 지아衣갤러리, 이새, 아신 등 대부분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부티크들이다. 주요 고객은 40대 이상의 ‘여사님’들. 몸에 붙지 않게 라인은 넉넉하게 살리고 꼬임·주름 등의 디테일은 우아하게 디자인한 옷들이 많다. 각종 보석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소소공방·아리·무 등의 금속 공방 역시 고급 취향이다.

개인 주전자, 간식 쟁반, 차 거름망 등과 함께 차려진 북스쿡스의 애프터눈 티 세트. [김상선 기자]

옷·액세서리 쇼핑이 끝났다면 이제 차 한잔 할 시간이다. 이 거리는 찻집도 여사님들의 취향처럼 우아하다. 직접 매장에서 커피콩을 볶고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만드는 커피전문점이 세 곳이나 있다. 그래서 핸드 드립을 한다면 꽤 괜찮은 카페다. ‘두루(DooRoo)’는 현관에 놓인 기계로 직접 커피콩을 볶는다. 덕분에 원두의 깊고 진한 향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한옥을 개조한 실내는 넓진 않지만 무게감 있고 아늑하다. 유기농 커피를 판매하는 ‘무위고이’는 실내를 온통 하얗게 칠했다. 도로 쪽 벽에는 통유리를 끼워서 산뜻하고 시원해 보인다. 커피 매니어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전광수커피하우스’는 늘 사람들이 많아서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 길에는 영국의 귀족 부인들처럼 고상하게 홍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북스쿡스’다. 무역업을 하는 정영순 사장이 출장·여행길에 하나씩 사 모은 ‘애프터눈 티 세트’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곳이다. 웨지우드, 로열 알버트, 제임스 새들러 등 브랜드도 명품이고 문양이나 생김도 같은 게 하나도 없어서 작은 갤러리처럼 느껴진다. 한쪽 코너는 200여 권의 요리 전문 서적으로 채워졌다. 이 또한 정 사장이 일본과 영국에서 사 모은 책들이다.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경원대 실내건축학과 현원명 교수가 개조한 한옥 인테리어도 볼 만하다.

덴푸라·벤토로 유명한 일식집, 이탈리아 피자집

이 길에는 소문난 식당도 여럿 있다. 도곡동에 이어 2호점을 낸 일식당 ‘츠키지’는 사장 부부가 매주 한 번씩 일본 도쿄의 츠키지 수산시장에 들러 수산물을 사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삭하게 잘 튀겨낸 덴푸라(튀김) 맛이 일품이다. 츠키지가 한 상 잘 차려내는 정식 스타일이라면 ‘큐슈닌센’은 일본식 벤토(도시락) 전문점이다. 가로로 길고 칸이 잘 나눠진 두 개의 도시락 통에 튀김·돈까스·초밥·샐러드·절임류를 아기자기하게 담았다. 여자가 혼자 먹기에는 버거울 만큼 인심도 좋다. 대신 테이블이 6개밖에 없어서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일도 예사다. 삼양사 김윤 회장이 구내식당처럼 자주 들른다는 이탈리안 식당 ‘로시니’도 미식가들 사이에선 소문난 곳이다. 가벼운 이탈리아를 만나고 싶다면 ‘대장장이 화덕 피자집’을 추천한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황토 화덕에서 5분 만에 구워내는 피자가 바삭하고 담백하다. 평소 “느끼하다”는 이유로 피자를 한 쪽 이상 못 먹는 사진기자도 이 집 피자는 세 쪽이나 먹었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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