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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으로부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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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세기 월드컵의 첫 개최국은 우루과이였다. 1930년 이 나라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제1회 대회가 열렸을 때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13개국만이 참가했다. 비행기 여행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유럽 선수들이 개최 도시에 도착하려면 한달 반의 지루한 배 여행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우루과이 당국이 각국 선수단의 여비와 체재비 부담까지 내걸어 참가를 독려했다.

주경기장도 미처 마련되지 않아 보조 경기장에서 치러진 조촐한 개막식은 선수단 입장과 함께 '축구는 영원하고 진정한 평화의 이상을 튼튼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의 월드컵 이념을 선포한 뒤 곧장 프랑스와 멕시코전에 들어갔다.

서구에서 TV가 본격 미디어로 등장한 70년대에도 월드컵 대회는 올림픽과 같은 화려한 개막식을 갖지 않았다. 82년 스페인에서 열린 12회 대회는 바르셀로나 소녀들이 관중석에 꽃을 던지며 등장하고 민속춤에 이어 소년들이 축구공에 든 비둘기를 날려 보낸 후 개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개막식의 주제가 뚜렷해지고 스타디움에서 펼치는 행사 내용도 화려해진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였다. 94년 미국 중동부 5대호 연안의 최대 도시 시카고에서 열린 15회 대회 때는 '월드컵은 지구를 하나로 만든다'는 주제로 음악과 노래, 각국의 민속춤이 어우러진 개막식이 진행됐다.

지금까지 어느 대회보다 가장 돋보였던 행사는 4년 전 프랑스에서 열린 '축구의 꿈'이라는 주제의 개막식이다. 경기장을 정원으로 삼아 비료를 뿌리고 싹이 돋아난 후 '축구화'가 활짝 피며 축구공들이 등장하는 과정이 시적으로 표현됐다.

어제 저녁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1세기 첫 월드컵 개막식은 이보다 더욱 화려하면서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해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의 주제와 소통(Communication) 등 4개의 소주제 아래 어울림과 상생의 동양사상을 돋보이게 했다.

3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야제의 슬로건은 '세계인이 하나로 되는 어깨동무'로 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의 주제 '벽을 넘어서'를 이어받은 느낌이다. 한국이 과거 침략국이었던 일본과 월드컵 대회를 공동개최하고 개막경기 역시 프랑스와 한때 그의 식민지 국가였던 세네갈과의 대전으로 짜여 있는 것 역시 지구촌 화합의 골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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