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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기념공연 갖는 이호재씨 - 연극인생 40년 "마침표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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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연극배우 이호재(61)씨가 올해로 연기 인생 40년을 맞았다. 그는 1963년 당시 동인제 극단 가운데 하나였던 행동무대의 '생쥐와 인간'으로 처음 무대에 섰었다. 이씨의 연기 40년을 기념하는 연극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가 6월 7~23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제작자는 그의 팬클럽 '빨간소주'의 리더인 공연기획사 컬티즌의 정혜영 대표이며 연출은 김동현씨가 맡았다.

"뭐 쑥스럽지요. '몇년' 운운하며 매듭을 짓는 것은 마치 배우의 수명을 계산하는 것 같아 싫어요. 하지만 어쩔수 있나요. 이를 기리고 싶어하는 후배들의 성화를 외면할 수도 없고."

두주불사형의 '소주파' 주당인 이씨는 연극계에서 가장 화법(話法)이 정확한 배우로 꼽힌다. 대사가 또렷한데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의 연기는 참 편하다"는 평가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도 카리스마가 강하게 배어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안이 실한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연기자라고 할까.

이번 출연작은 중견 극작가 이만희(동덕여대)교수가 1990년대 초반에 이호재·전무송 콤비를 대상으로 구상했던 작품이다.

이씨와 전씨는 드라마센터(현 서울예대) 1기 동기동창으로 '마의태자'(64년) 등 수많은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70~80년대를 풍미했던 연극계의 전설이다. 그러나 96년 대학로극장에서 '아름다운 거리'라는 제목으로 유영환·김주승이 짝을 이뤄 먼저 공연했다.

"애초 기획 단계에서 무송이와 같이 서면 어떨까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됐네요. 그래서 연극이 제(우리) 이야기라는 말이 부담이 돼요. 그저 괜찮게 봐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 아니라 관객의 예술이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연극의 주인공은 50대 동갑내기 안광남(이호재)과 민두상(이봉규)이다. 고교 동창으로 결혼과 사업에 실패한 뒤 함께 사는 처지다.이들의 티격태격하는 일상에 안광남의 전처 고이랑(윤소정)이 등장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관계에서 적절한'거리'를 두지 않으면 친구나 부부 관계도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으므로 '아름다운 거리'야 말로 진정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메시지다.

이번 작품은 사실 난산(難産)이었다. 연습 시작 며칠 뒤인 지난달 말 이씨는 퇴행성 관절염과 통풍이 악화돼 2주간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중도 포기도 고려해야할 상황이었다. 99년 '조선제왕신위' 공연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이씨는 "병을 키운 게 자랑일 수 없다. 배우의 몸관리가 이래서 되겠냐"며 겸연쩍어했다. 그러나 이씨는 동료를 병실로 불러모아 연습을 하는 근성을 보이며 빠르게 털고 일어섰다.

이씨는 발동이 늦게 걸리는 연기자에 속한다. 대사 외우는 속도도 지지부진해 연출자를 애태우기 일쑤다. "대본을 빨리 외우면 작가의 의도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는 게 이씨의 항변이다. 이번 연극은 TV나 영화 등 화려한 대중예술의 구애 속에서도 쉬이 타협하지 않으며 꼿꼿하게 살아온 '선비형 연극배우'의 진솔한 연기세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02-765-5475.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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