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의 개막식이 열리는 서울. 조선시대부터 5백년이 넘은 도읍지답게 먹을거리에 있어서도 대한민국의 수도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버스나 차로 몇시간씩 허비하지 않아도 흑산도 홍어회를 한점 입에 넣어 맛을 즐길 수 있고, 석쇠불판에서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를 들으며 언양 불고기의 달콤함에 취할 수도 있다. 비록 몸은 오갈 수 없지만 북쪽의 평양냉면이나 개성 조랭이떡국, 그리고 함경도 아바이순대도 양껏 먹으며 분단의 아픔을 달랠 수 있다. 8도 사람이 모인 곳인 만큼 8도 음식도 덩달아 총집결해 있다.
그래도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은 다른 지역에선 흉내낼 수 없는 궁중요리. 임금을 주인공으로 한 궐 안의 음식은 이를 본받아 발전한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반가(班家)요리. 현재에 이르러서는 격조있는 한정식으로 그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다른 지방에도 한정식이 있지만 서울의 한정식과는 격이 다르다. 지방 한정식집은 지역 특산물을 중심으로 한 상차림인 반면 서울의 한정식집들은 대부분 지역 특산물 중에서 고르고 골라 양식(洋食)처럼 코스로 내는 곳이 많다. 그래서 상다리가 휠 정도의 푸짐함은 없다. 대신 코스마다 음식에 손대기가 안타까울 만큼 정갈하고 깔끔하다. 그릇 하나, 술잔 하나도 세심한 정성을 쏟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남쪽에서 준비한 만찬이 서울 한정식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이 메뉴는 서울 남산 국립극장 안에 있는 '지화자'음식점에서 그대로 재연해 판매 중이다.
오이선·어선·삼색밀쌈에 새우를 잣소스로 버무려 만든 모듬 전채요리로 시작하는데 커다란 백자그릇에 1인분씩 오밀조밀 담겨서 나온다. 다음은 서양의 수프격인 호박죽이 은그릇에 담겨 나온다. 뚜껑을 열면 노란색의 호박향이 무척 반갑다.
곧이어 은대구 구이와 삼색전으로 이어지면서 신선로·갈비수삼구이·삼합찜에서 절정을 이룬다. 음식 하나하나가 맵거나 짜지 않아 재료 고유의 맛을 고스란히 살렸다.
서울 생활 4년째인 일본인 주부 시주코 페르너는 "신선로는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식탁 위에 펼쳐진 화려한 이벤트"라고 좋아하며 "한·일 월드컵 한달 동안 펼쳐질 그라운드 위의 묘기와 명승부만큼 다음 코스의 음식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요리 코스를 마친 뒤 식사는 비빔밥.투명하도록 하얀 탕평채와 맑은 장국의 석류탕이 곁들여진다. 후식으로 나온 식혜에 과일·매작과·궁중떡으로 입을 정리한다.
시주코의 미국인 친구 리사 리찰슨은 "서울 시내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전통가옥에 편안하게 가꿔진 정원이 있는 한정식집을 여러 곳 다녔는데 어디를 가도 임금님이 부럽지 않은 식사였다"며 활짝 웃었다.
유지상 기자
'월드컵 맛' 글 실은 순서
⑨ 인 천
4월24일자 53면
⑧ 수 원
4월10일자 53면
⑦ 대 전
4월3일자 55면
⑥ 대 구
3월27일자 53면
⑤ 울 산
3월13일자 55면
④ 부 산
2월22일자 53면
③ 전 주
2월8일자 51면
② 광 주
1월24일자 53면
① 서귀포
1월11일자 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