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 분배 두 '대표학자'의 한국경제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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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학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온 '성장론자'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분배론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국회 내 연구단체인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대표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은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 전 총리와 변 교수를 초청해 '한국 경제 사회의 제3의 길'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회를 열었다. 남 전 총리는 '한국 경제의 기본 과제와 경기대책', 변 교수는 '시장경제는 만능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를 싸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두 원로의 연설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남 전 총리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동시에 연설의 많은 부분을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변 교수는 평소의 지론인 분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면서도 효율성과 개인의 자유라는 시장경제의 장점도 짚었다.

정덕구 의원은 "두 원로의 말씀을 들으니 제3의 길은 결국 건강한 시장경제와 따뜻한 사회안전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두 학자의 연설 요지.

성장주의 거두 "서강학파"의 태두로 꼽히는 남덕우 전 총리는 수출을 중심으로 "선(先) 성장, 후(後) 분배"를 강조하며 1960∼70년대 압축성장 시대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산업화된 사회에서 정부가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을 무시하고 민간 활동에 불합리한 간섭과 규제를 강요하면 역작용이 생긴다. 정부는 시장경제의 자율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다만 시장이 못하는 일(시장 실패)이나 정부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장점은 그 틀 안에서 모든 경제 주체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하려는 자유와 의지와 창조력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금 시장의 자율 기능에 제동을 걸지 말고 이를 가로막는 규제를 혁파해 민간의 자조 노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요즘 같은 정치.사회적 혼돈에도 4~5%의 성장을 유지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유와 자율기능 덕분이다.

경기 부양도 중앙 정부보다 지방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을 존중하고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장기정책이 뭔지 혼란스럽다. 수많은 위원회가 220여개의 수많은 '로드맵'을 생산하고 있는데 정부가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여러 문제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을 골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경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중국의 경제 도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정책의 효율화▶부품 소재산업의 개발▶동북아 서비스 중심지 개발▶농업의 기업화와 과학화 등 4대 과제에 정부가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대기업은 스스로 자기가 사용하는 부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부품.소재산업 발전은 정부가 규제를 철폐할 때 가능하다. 정부가 정보와 인프라만 제공하면 중소기업은 스스로 투자기회를 찾아간다.

충청도 공주와 연기를 행정 도시로 만드는 게 반드시 발전전략에 맞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행정수도 예정지 2160만평을 토지공사가 토지채권을 발행해 전량 매입한 후 기업 도시로 개발하면 충청도와 나라가 다 같이 발전할 뿐 아니라 수도권 인구 분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평준화와 규제를 앞세우고 기업의 기발한 창발력(創發力)을 활용할 줄 모르는 게 우리 경제 운용의 맹점이다.

연기금을 사회간접자본 등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차라리 정부가 가칭 '경제 부흥 국채'를 발행해 유리한 금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각종 기금이 이를 인수하도록 하는 게 낫다. 어차피 정부는 연기금의 부족액을 보전하게 돼 있으니 시장금리보다 더 줘도 무방하다.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다. 경제는 자전거와 같아서 구르지 않으면 쓰러진다. 성장이 없으면 분배 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 지금은 성장을 통해 실업자를 줄이는 게 분배를 개선하는 최우선 과제다.

분배주의 수장 변형윤 교수는 분배 정의론을 내세우는 "학현(변 교수의 아호)학파"의 수장으로 분배를 중시하고 경제 정의의 실현을 주장해왔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요직에 진출한 이정우·김대환 교수도 변 교수의 제자들이다.

◆ 서울대 변형윤 명예교수=시장경제에는 결함이 있다. 흔히 시장 실패라고 부르는 것 말고도 소득과 부의 분배가 불공평해질 수 있다. 개인은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화 추세가 강화되면서 소득 분배의 형평성은 더 나빠졌다. 이렇게 되면 결국 빈곤계층이 희생양이 된다. 그래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 북유럽 4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북유럽 4개국이 한국은 물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낮다. 지니계수는 낮을수록 소득 분배가 양호하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의 국가경쟁력이나 1인당 소득은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 분배가 잘 돼야 국가 경쟁력도 오르고 소득도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케인시안(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이 아니라 마셜리안(Marshallian)이다(그러나 학계에서 변 교수를 사회주의 경제학자나 급진 개혁사상가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주류 경제학 체계 내에서 분배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비주류라는 평이 많다). 시장경제의 매력은 효율과 자유다. 개인적 자유를 보장해주는 시장경제가 자본주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1920년대 나타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눌렀다. 사회주의는 결국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자꾸 분배를 중시한다고 하는데 성장을 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너무 "성장, 성장"만 외치지 말고 사회안전망과 복지에 돈을 쓰는 여유를 갖자는 거다. 꼭 고성장을 해야 그게 성장인가. 4~5%만 성장해도 충분하다. '따뜻한 사회안전망'과 분배에도 신경 쓰자.

정리=서경호 기자<praxis@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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